[교육/'널뛰기 수능' 긴급 좌담]"최소한 예측 가능했어야"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3분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돼 성적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한해는 너무 쉽고 한해는 너무 어렵게 출제되는 ‘널뛰기 난이도’에 울분을 터뜨리고 교육 당국의 수능 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수능 출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수능시험 출제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초청,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

▼참석자 명단▼안희수(2002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배영찬(한양대 입학관리실장)/박만제(부산 용인고 진학지도 교사)/김정명신(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이인철(사회·동아일보 사회1부 차장대우)

▼관련기사▼

- “수능 출제 획기적 개선”
- "포퓰리즘 교육개혁 실패 수능서 드러나"



▽사회〓수능 성적이 지난해보다 60점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학부모와 수험생이 놀란 것 같습니다. 수능 출제를 주관하신 안희수 출제위원장이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안희수 출제위원장〓경위야 어찌됐건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출제 책임자로서 무척 송구스럽습니다. 수험생들을 골탕먹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상위 50%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평균 성적이 100점 만점에 77.5점±2.5점이 되도록 한 목표치가 빗나간 만큼 예년보다 어려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출제위원들의 60%가 올해 출제에도 참여했고 실제로 문제의 80% 정도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질이 낮다고 비판받을 만한 수준의 문제는 출제하지 않았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이 학습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영역별로 2, 3개 문제는 어렵게 냈지만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만제 부장〓시험 다음 날 부산 지역 80개 인문계 고교를 상대로 가채점 결과를 집계하려 했더니 당일 결과를 제출한 학교가 9개교에 불과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성적을 적어내지 않거나 학교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학 지도 교사 10여명이 함께 문제를 풀어봤는데 문제 자체는 ‘참신하다’ ‘다양하다’ ‘다단계 사고가 필요한 문제다’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쉬운 시험에만 익숙해 있어 무척 당황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좋아도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야단을 맞아야 합니다.

▽김정명신 공동회장〓저도 수험생 학부모이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한마디로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우리는 쉬운 문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문제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교육 당국이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탓도 큽니다. 이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지금 고3 학생들이 중3이었던 1998년에 새 입시제도가 발표된 뒤 ‘무시험 전형’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공부 안해도 대학에 간다’고 해놓고 막상 새 대입제도가 첫 적용되는 이번 수능은 무척 어렵게 나왔습니다. 쉽고 어렵고의 차원이 아니라 대입정책 전반이 안고 있는 문제가 이번에 드러난 것입니다.

▽배영찬 실장〓너무 쉽게 출제됐던 지난해 수능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 갑자기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니까 상당히 놀랐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충격도 점차 줄어들겠지요. 너무 난이도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박부장〓올해 교육청 주관으로 모의고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시험 시간을 참지 못하고 들락거릴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보충수업도 하고 모의고사도 여러번 보면서 대비했지만 올해는 일절 금지하지 않았습니까. 고교에서는 전년도 수능을 기준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훌륭해도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김회장〓사설 입시기관들이 실시하는 모의고사를 금지한 것은 옳다고 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공교육의 정상화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배실장〓대학은 수능 성적을 백분위로 반영하기 때문에 사실 난이도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수능이 변별력이 있으면 좋겠지요. 걱정되는 것은 수능시험 하나로 학생들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각 대학에서 새로운 평가 방법을 마련해 수험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수시모집은 수능 의존도를 줄일 수 있어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박부장〓수능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어(영어) 영역을 없애고 토플 토익 등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해마다 말이 많은 듣기 평가의 부작용도 없앨 수 있겠지요.

▽안위원장〓한번 고려해 볼만한 문제이긴 하지만 국내에 이런 수준의 문제가 없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회장〓각 대학이 수능시험을 자격고사로 활용하고 다양하게 개발한 입시제도가 정착돼야 합니다. 이런 제도가 막 도입되는 단계에서 수능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혼란이 초래됐습니다. 여러 대학들이 현재 다양한 학생 선발 방법을 추진하는 마당에 권위 있는 국가시험이 이를 무너뜨린 셈입니다.

▽사회〓수능의 난이도를 단계적으로 조절했더라면 충격이 크지 않았을텐데요.

▽안위원장〓그랬으면 별 문제도 없고 좋았겠지요. 그러나 올해 수능은 문제의 난이도 이외에 또다른 교육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수능은 고교 교육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참신하고 좋은 문제를 출제할 의무가 있습니다. 수험생의 학력을 고려하지 않고 출제한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견해는 교육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학생을 가르칠 때는 학생이 성취해야 할 학습 수준을 고려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실력에 편차가 있다고 해서 시험 수준을 이에 맞추는 것은 평가의 취지가 사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부장〓수능 출제와 관련해 별 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지난해 수능을 참고로 올해 학습지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난이도가 해마다 들쭉날쭉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사회〓난이도를 검증하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안위원장〓난이도를 맞추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출제위원들과 검토요원들이 한 문제당 7, 8차례 출제와 검토를 반복해 출제합니다. 현직 고교 교사인 검토위원 71명이 2차례에 걸쳐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풀어보는 과정도 있습니다. 낱말 하나까지 검토하고 문장 전후 관계 배치까지 꼼꼼이 살폈습니다. 출제자는 이 문제는 쉽게 풀겠지 하고 출제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반대도 가능하구요. 편차가 커진데 대해 나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고충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김회장〓애 많이 쓰신 것은 알지요. 그러나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자격시험입니다. 학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밤새도록 공부해서 익힌 지식이 대학 공부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배실장〓한양대가 최근 5년 동안 신입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수능보다는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이 학업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야구에서 정규 시즌에 우승하는 팀이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이고 플레이오프 등 단기전에는 운도 따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고교에서 성적 부풀리기를 하지 말고 내신을 정확하게 상대평가하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안위원장〓수능시험 이후 익명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문제가 좋았다는 격려도 많았습니다. 문제 자체에는 질적으로 하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출제위원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충격에서 벗어나면 이성적인 평가가 나오면 다른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회〓수능이 제자리를 찾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배실장〓수능은 대학 입장에서 보면 전체 학생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수능 하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나름대로 특성에 맞는 평가방법을 개발해야 할 때입니다. 대학들도 이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안위원장〓수능이 최상의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개선이 필요하지요. 내신 수능 면접 등을 한꺼번에 반영하면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지고 다른 평가 요소의 비중이 커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수능이 존속되는 한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개선책을 찾아야 합니다. 수능이 끝난 뒤 사설입시기관이 예상점수를 공개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책임 있는 공적 기관이 객관적인 예상치를 집계해 발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합니다.

▽김회장〓이번 수능을 계기로 도출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합니다. 올해 고3 수험생의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이 아이들의 기본 자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고교 3년 동안 학습 방법이 달라져 어려움을 겪은 것이지요. 학력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합니다.

▽배실장〓공감합니다. 예전의 수학 시험은 논리적인 사고를 평가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계산 능력은 의미가 줄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수학문제를 직접 푸는 것은 서투를지 몰라도 정보통신 등 다른 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도 많습니다. 시험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고 실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죠.

▽박부장〓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올 수능 문제 자체는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내년에는 다시 달라지지 말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년에는 또 문제가 쉽게 나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선 교사들의 교육 관련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발 수능이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정리〓홍성철·박용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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