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타락 5대귀신 물러가라"…거리무대 오른 철학교수들

  • 입력 2001년 4월 12일 18시 52분


12일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에서철학교수들이 마당극을 공연하고 있다.
12일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에서
철학교수들이 마당극을 공연하고 있다.
“그대 권력자, 재력가, 배운 자들아 / 죽어 가는 도덕성을 나몰라라 하는구나 / 너 무감각 귀신아 썩 물러가거라.”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에서는 이색적인 마당극 한판이 벌어졌다. 저승사자, 귀신 등의 분장을 하고 능숙하지 않은 발성으로 대사를 외쳐댄 배우들은 대학의 현직 철학교수들. 유초하(柳初夏·충북대), 황경식(黃璟植·서울대), 박정순(朴政淳·연세대)교수 등 8명의 교수가 열연을 했다.

전국의 철학교수 등 1000여명이 지난해 4월 결성한 전국철학교육자연대회의(공동의장 대표 김광수·金光秀한신대교수)가 우리 사회의 도덕성 타락을 경고하는 이벤트로 마련한 이번 마당극의 제목은 ‘도덕성 장례식’.

마당극은 ‘철밥통’ ‘막정치’ ‘돈조아’ ‘반개혁’ 등의 등장인물이 도덕성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자신의 악행을 번번이 가로막는 도덕성이 마침내 죽어간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빨리 저승사자가 데려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철학자를 상징하는 ‘호롱불 든 노인’이 나타나 무당에게 도덕성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무당은 도덕성에 붙어있는 5가지 ‘귀신’을 쫓아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귀신들은 바로 거짓말, 금전만능, 이기주의, 비합리성, 가진 자의 무책임 등. 결국 무당은 한바탕 굿을 통해 귀신들을 몰아낸다.

관객들은 ‘5대 귀신’을 하나씩 쫓아낼 때마다 박수와 추임새로 흥을 돋웠다. 연습부족으로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해 대본을 손에 들고 보면서 연기를 했지만 교수들의 열기와 성의는 기성 배우들 못지 않았다.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을 염두에 두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극본을 썼다는 김광수교수는 “경제위기의 뿌리는 다름아닌 우리 사회의 타락한 도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도덕성 회복을 사회적 화두로 이슈화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도덕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큰 어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저승사자의 말에 따라 연기자와 관객이 꽃상여를 메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는 것으로 1시간 여의 마당극은 끝이 났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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