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촌은]"우리동네 막내는 50대"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39분


《‘마음의 고향’인 농촌. 일부에선 농촌을 목가적 분위기로만 연상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농촌에서 젊은이와 어린이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진 지 오래다. 요즘에는 곳곳의 농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심지어 ‘농사포기’선언까지 하고 있다. 왜 그런가. 오늘의 농촌 모습과 문제점, 그 원인과 처방 등을 시리즈로 엮는다.》

비좁고 기다란 논두렁길로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새참을 나르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막걸리를 담은 주전자를 들고 낑낑대며 뒤따르는 꼬마들. 농번기 때면 볼 수 있었던 이같은 장면은 이제 농촌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젊은 아낙네도 꼬마도 이젠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있다 해도 새참을 할 시간이 있으면 대신 일을 해야 할만큼 일손이 달린다. 농촌에서 어린이의 울음소리와 농민의 웃음소리가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황량한 농촌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산 좋고 물 맑기로 이름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 속칭 ‘진시골’.

7일 오전 이 마을 앞 서시천을 지나자 시멘트로 포장한 진입로가 나타났다. 그러나 군데군데 잡초와 흙더미로 뒤덮여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마을 이장 박시락(朴時洛·62)씨는 “노인들은 농사에도 힘이 달려 진입로 정비 따위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89세 노모를 부인(63)과 함께 모시고 있다는 그는 “마을주민 14가구 중 50대 1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60, 70대”라면서 “10여년 전만해도 30, 40대가 많았는데 이제는 ‘노인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이름난 전남 화순군 청풍면 한지리 순지동마을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 마을 어귀 농가는 사람이 살지 않은 지 10년이 넘어 마당에는 잡풀이 사람 키를 넘을 만큼 무성했다. 방문은 뜯겨져 온데 간데 없고 버려진 가구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노인(73)은 “농사를 지어봤자 손에 쥐는 것은 없고 빚만 늘어 아무래도 내년에는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아들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대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이병기(李炳基·73)씨는 “이젠 농기계를 다룰 힘마저 부쳐 농사를 포기할 생각”이라며 “이젠 예전의 정답고 푸근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고 한숨지었다.

마을에 어린이들이 사라지면서 40여년 역사의 초등학교도 97년 문을 닫았다. 현재 이곳에 학생이라고는 초등학생과 고교생 단 두명뿐이다.

“초상이 나면 상여를 맬 사람이 없어 일당을 주고 일꾼을 삽니다. 회갑이나 진갑잔치도 음식을 장만할 사람이 없어 읍내 식당에서 합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이 마을 구제중(具齊中·55)씨는 “추수가 끝나면 마을 당산나무 앞에서 걸판지게 추수감사잔치를 벌이곤 했지만 농가부채가 늘고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인심이 나빠지면서 잔치는 옛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의 한 마을. 80년대 초까지 대부분 벼와 보리농사를 지으며 10가구 42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이 마을은 현재 8가구에 17명만이 살고 있다. 이중에 정상적인 노동력을 가진 사람은 손꼽을 정도.

군대를 갔다와 부모를 모시고 고향에 정착, 반장을 맡으며 이웃을 돌보기도 했던 K씨(45)는 빚에 시달리면서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 한때 문전옥답이던 이 마을의 상당수 농토도 장기간 방치되면서 억새풀만 무성한 황무지가 됐다.

한 주민은 “우리마을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청송·화순·사천〓정용균·정승호·강정훈기자>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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