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주택총조사]김희복씨 "인구조사 발품팔기 힘드네요"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37분


오후 11시. 컴컴하고 좁은 골목길에서 그녀 뒤를 살금살금 따라오는 검은 양복의 남자. 등골이 오싹해지고 몸 전체로 한기가 퍼져오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누군데 계속 내 뒤를 따라오는 걸까.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다음 집 조사만 끝내면 오늘 목표는 채울 수 있는데….’

환한 가로등 아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흘끔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남자도 멈춰서는 게 아닌가. 식은땀이 주르륵. 골목 끝 집을 향해 달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헐떡이며 멈춰선 대문 앞. 잠시 후 뒤를 좇던 남자의 손길이 어깨에 닿는다.

“으악….”

이어지는 남자의 말.

“인구조사 나오신 분 맞죠. 옆집 아저씨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이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네 번이나 다녀가셨다고요. 그런데 저 때문에 놀라셨나 보군요. 죄송해서 어쩌나….”

◇15년째 같은 일 보람느껴

10일까지 계속되는 ‘2000 인구주택총조사’를 위해 서울 전역을 누비고 있는 통계청 조사요원 김희복씨(44·여)의 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올해로 15년째 통계조사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인구주택조사만도 세 번째지만 일이 고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맞벌이 주부가 늘면서 낮 시간대 빈집도 증가해 오히려 일이 더 힘들어진 데다 조사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예전보다 많아져 네댓 번을 찾아간 뒤에야 겨우 설문지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잡상인으로 오해받아 쫓겨나는 일도 있고 주거침입으로 고소하겠다는 사나운 여자들의 고함에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한다.

김씨가 조사하는 것은 가구 단위로 실제 거주하고 있는 사람 수와 그들의 나이, 직업, 성별, 학력 등의 인적사항. 거주주택의 규모도 김씨가 챙겨야할 정보 중 하나다. 표본조사의 경우에는 다른 집을 조사할 수도 있지만 인구주택조사와 같은 전수(全數)조사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 모든 가구의 거주자 정보를 조사해야 해 어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남을 귀찮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오후 9시가 넘어 2, 3분씩 망설이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심정을 누가 이해해 주겠습니까.”

◇일요일도 반납 가족에 미안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15년째 만들어 온 통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국가살림과 각종 연구활동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통계가 자신의 땀과 발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

“통계조사는 당사자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의미를 가질 수 있어요. 저희 같은 조사요원이 찾아오면 문전박대하지 마시고 반갑게 맞아주세요.”

밤낮으로 남을 ‘귀찮게’ 하느라 자정 무렵에야 퇴근하고 일요일까지 반납해야 하는 김씨. 그래서 요즘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집에 있으면 오히려 피곤하다며 일요조사에 동행하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다.김씨는 이번 조사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주말쯤에는 오랜만에 근사한 식당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저녁식사를 사줄 생각이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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