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수사 물건너 가나…"사정없다" 한마디에 움찔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41분


정치인 비리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점점 성역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검찰이 정치인 관련 범죄혐의를 포착하고서도 여야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수사에 소극적인 경우가 적지 않은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정(司正)수사는 없다”고 언급함으로써 정치인 수사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 반응〓일선 특수부 검사들은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정치인 수사는 사실상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젊은 검사는 “솔직히 검사들의 의욕이 상당히 꺾였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정치인 수사를 위험부담을 안은 채 감행할 검사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6월 동아건설이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거액을 뿌렸다는 혐의를 포착해 내사를 벌였으나 아직까지 관련자 소환조사 등 본격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또 96년 15대 총선직전 정치권에 안기부 자금이 유입된 사건에 대해서도 계좌추적을 거의 끝냈으나 정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선뜻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대검 관계자는 “가까스로 정치권이 정상화된 마당에 검찰이 나서서 정치판을 깨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검찰 스스로 국민과 정치권의 오해와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검찰은 지난 4·13총선 직전 병역비리사건 수사를 강행해 야당으로부터 검찰이 여당을 위해 선거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일선 검사들은 지금처럼 권력형비리에 눈을 감기보다는 검찰 본연의 임무인 권력형 비리 척결에 나서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법조계 의견〓특수부 검사출신인 한 중견 변호사는 “이번 대통령의 말은 검찰이나 검사들에게 ‘위축효과’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검찰이 가뜩이나 여야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국정 최고책임자까지 ‘사정수사는 없다’고 말하면 검찰이 설 땅이 좁아진다”고 말했다.

또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문제는 대통령의 말보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검찰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은 ‘정치권에서 찍어서 누구누구를 잡아 넣어라’고 할 것이 없다는 뜻이지 정치인 전반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지레 짐작해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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