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경기]문원동 송전탑 건립 갈등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32분


경기 과천시 문원동에 18년째 살고있는 이경재씨(50)는 요즘 울화통이 치밀어 잠이 오지 않는다. 과천시가 이 마을에 345㎸ 송전탑을 건설하려는 한전에 최근 행위허가를 내줘 조만간 80m 높이의 송전탑들이 마을 코앞에 들어서게 됐기 때문이다. 5년여간 한전과 힘겹게 벌여온 싸움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씨는 “초고압 송전선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통과하는 곳은 이 마을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전과 끝까지 싸워서라도 생존권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한전과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대립해온 문원동 1, 2단지 7300여명의 주민들은 최근 과천시청 정문 앞에서 연일 ‘송전탑 설치 반대 시민결의대회’를 열고 과천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분쟁경과〓한전이 96년 3월 신성남∼양지변전소간 345 송전탑 7개를 세우기 위해 과천시에 그린벨트 행위허가를 신청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주민들과 과천지역 4개 시민단체는 ‘과천생명민회’를 조직해 전자파 유해논란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기하는 등 강력 반발했고 과천시도 행위허가를 불허했다. 경기도와 서울행정법원에 낸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도 효과가 없자 한전은 지난해 감사원에 심사를 청구했고 결국 8월21일 과천시로부터 5년 만에 행위허가를 받아내 착공을 앞두고 있다.

▽주민주장〓주민들은 마을과 송전철탑과는 130m∼250m의 근접거리로 전자파 피해는 물론 80m 높이의 철탑이 붕괴될 경우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송전탑 7개 중 마을과 인접한 4개는 반드시 지중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원2단지 대표 김사연씨(50)는 “이미 154㎸ 초고압선이 마을과 180∼300m 거리에 있고 마을 입구에 변전소가 있는데 345㎸마저 들어오면 마을이 온통 고압선으로 둘러싸이게 된다”며 “지중화는 생존권 차원의 문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주민들은 또 한전이 ‘주민요구를 받아들여 철탑 2기를 마을로부터 50m 후퇴시키겠다’는 말은 주민들이 요구한 ‘철탑 4기의 전면 후퇴’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한전이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80년 서울대공원이 조성되면서 이 곳으로 집단이주한 주민들은 “이제 정붙이고 살 만하니까 또다시 내쫓으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과천생명민회 공동대표 전재경씨(44)는 “과천시장을 상대로 행위허가 취소 청구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며 “행위허가가 철회되지 않으면 시장 퇴진운동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입장〓한전 전력계통 건설처 김철환 송전2부장(51)은 “변전소 이전 등 주민합의사항을 수용했다”며 “지중화는 480억원의 비용과 7년의 공사기간이 소요돼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이곳을 지중화하면 다른 지역들과의 형평성문제가 제기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과천시 관계자는 “감사원 결정에 따라 행위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며 “행위허가의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중화 없이 공사가 강행되면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는 주민들과 지중화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한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사태해결은 힘들 전망이다.

<과천〓남경현기자>bibul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