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로비수사]佛-獨 정상까지 나선 '수주전쟁'

  • 입력 2000년 5월 10일 19시 24분


검찰의 수사로 주목을 받게 된 경부고속철도의 차량 선정을 둘러싼 로비는 프랑스와 독일 양국 정상이 발벗고 나설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숨가쁘게 진행됐다.

이 사업은 규모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차후 아시아 고속열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에 양국은 수주를 위해 필사적이었다.

양국은 81년 6월 제5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에 서울∼대전간 고속철도 건설계획이 반영되고 83년 한국이 고속철도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자 로비전이 시작됐다.

▼한번에 2억달러 인하도 ▼

테제베(TGV)를 생산하는 프랑스 GEC알스톰사는 83년 초대 미스코리아 출신 재프랑스 교포 강귀희(姜貴姬·64)씨에게 에이전트(대리인)계약을 제의하고 다음해 ‘수수료는 총 수주비용의 5%(정치자금 3% 포함)’라는 조건으로 공식 계약을 맺었다. 91년 차량 선정에 착수할 당시 총 수주비는 26억달러 수준이어서 수수료는 무려 1억3000만달러(현재 환율로 1400여억원)에 달했다.

이체에(ICE)를 생산하는 독일 지멘스사는 당시 미국 벡텔사 회장이었던 전 미국 국무장관 슐츠와 손잡았다. 슐츠는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북방외교를 지원했던 인물로 ICE가 선정되면 고속철도의 기반시설 공사의 기본 설계를 벡텔사가 맡을 수 있었다.

노전대통령 재임 시절인 90년 6월 경부고속철도 노선이 확정되고 91년 8월 고속철도 차량형식 선정을 위한 제의요청서(REP)가 TGV, ICE, 일본 신칸센(新幹線) 등에 발송되자 로비전은 본격화됐다.

일본 신칸센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자국 언론의 비판을 받을 만큼 수주전을 민간 차원에 의지했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달랐다.

양국은 91년 8월부터 93년 7월 6차 수정제의서를 접수할 때까지 치열한 정보전과 로비를 병행했다. 이 사업 수주의 핵심은 ‘가격’과 ‘기술 이전’에 있었다. 양국은 상대방의 제의서 내용을 알아내 서로 가격을 낮추고 기술 이전 비율을 높이기를 거듭했다. 한꺼번에 1억∼2억달러씩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로비의 하이라이트는 양국 정상의 움직임이었다. 93년 3월 당시 독일 콜총리가 방한해 노골적으로 차량 선정을 부탁했고 같은 해 9월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도 방한 일정을 잡았다. 미테랑 대통령은 일주일에 한번씩 알스톰사장을 불러 협상 진행상황을 보고받을 정도였다.

▼각종 금품수수설 나돌아 ▼

93년 2월에는 스페인의 고속철도 차량 수주전을 벌이면서 지멘스사는 약 70억원, 알스톰사는 약 290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경부고속철도 수주전에서도 상당한 금품 수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으나 무시됐다.

수주전은 알스톰사의 승리로 끝났다. 지멘스사를 100점 만점에 1점차로 제치고 93년 8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멘스사는 94년 6월 21억160만달러의 최종 계약이 맺어질 때까지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역전의 기회를 노렸으나 결국 손을 들었다. 양국의 치열했던 로비전은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상당한 이익을 안겨줬다. 한국은 알스톰사를 협상 당사자로 지정할 때보 다 차량 가격을 2억7000만달러나 깎았고 상당한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이 수주전을 ‘손해본 장사’로 평가했고 독일 언론은 ‘마케팅의 실패’라고 지멘스사를 비판했다.

경부고속철도의 수주전은 프랑스와 독일 양국에 뼈아픈 경험으로 자체 평가됐다. 알스톰사와 지멘스사는 95년 7월 아시아시장에서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마케팅 제휴를 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하준우기자>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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