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 낙선운동 성공]'정치권 견제' 본때 보여줘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16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정치개혁의 첫걸음을 내딛는 ‘유권자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 속에 일단락됐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유권자에게 소중한 희망을, 방자했던 정치인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던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낙선운동을 통해 시민단체가 한국정치사회에 새로운 정치 견제세력으로 등장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낙선운동 결산▼

86명의 전체 낙선대상자 가운데 낙선자는 59명(68.6%), 22명의 집중낙선대상자 중의 낙선자는 15명(68.2%)이었다. 총선연대 관계자들조차 “우리도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성공작이었다.

이같은 성과는 1차적으로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3일 투표에서 낙선대상자를 찍지 않았다는 회사원 김승모씨(30)는 자신이 낙선운동에 동참한 이유를 “시민단체가 적어도 낡은 정치권보다는 훨씬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보스정치, 지역정치에 식상해 있던 수도권 유권자들에게 특히 두드러져 수도권 20명의 낙선대상자 중 19명이 무더기로 낙마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변화를 간과한 정치권의 무지(無知)도 낙선운동의 성공요인. 정치권은 공천반대자 상당수의 공천을 강행했고 낙선대상자들도 총선연대에 대해 “사이비단체의 오만방자한 태도”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으로 줄곧 반발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태도는 유권자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결과였고 결국 유권자는 표로 이들을 심판한 셈이다.

▼낙선운동 성공의 의미▼

성공회대 NGO학과 조희연교수는 “낙선운동의 성공으로 정치인은 싫든 좋든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이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정치권에 ‘스스로 깨끗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공천반대운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도처에서 나타났다. 총선연대가 소명자료를 요구하자 일부 정치인들은 저자세로 돌변, 수백건의 소명자료가 물밀듯 도착했고 읍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권이 시민사회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질적인 보스정치 패거리정치도 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는 보스의 뜻대로만 움직이면 공천이 보장되고 당선에도 유리했지만 시민단체들이 나서 의원 개개인의 능력과 개혁법안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게 되면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총선연대 이태호(李泰浩)기획조정국장은 “그동안 보기 어렵던 크로스보팅 같은 소신행동이 16대 국회에선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국장은 “시민단체가 국회출석률이나 법안발의 능력 등을 낙선자 선정의 주요기준으로 삼을 경우 의정활동도 훨씬 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점만 부각" 비판 적잖아▼

낙선운동이 한국정치에 장밋빛 희망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낙선운동이 선거를 온통 상대방의 약점만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대학생 장형수씨(23·서울대 경제학부)는 “선거 때 ‘누구는 이런 약점이 있다’는 소리밖에 못들었다”며 “젊은층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선거가 줄곧 이런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 외에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전망과 비전을 제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같은 한계가 계속 반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 총선연대는 낙선운동기간 중 ‘이 사람을 찍지 말아야 할 이유’는 명확히 밝혔지만 ‘이 사람을 찍어야 할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 특히 조직과 인력의 한계 등으로 낙선대상 인물선정의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점도 오점으로 남았다.

그래서 아직은 시민단체가 정치적 대안을 제시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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