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용·장무환씨,국회국방위서 국군포로 대책 호소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49분


《“광산이나 탄광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내다 대부분 사고와 질병으로 숨졌다.” “우리 아이들은 머리가 좋았지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다룬 23일 국회 국방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양순용(梁珣容) 장무환(張茂煥)씨는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자녀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자신들의 경험과 함께 털어놓고 대책을 호소했다.》

양씨 등 귀환 국군포로와 탈북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국군포로는 대부분 6·25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예하부대에 편성돼 건물 교량 도로복구 작업에 동원됐다가 함북 아오지 등 탄광지역으로 끌려갔다.

출신 성분이 최하계층으로 분류된 이들은 보위부와 안전부의 특별감시대상이어서 모든 행동을 통제받았다.

탄광지역이외에는 일절 외출할 수 없도록 철조망을 치고 감시하며 무단외출 사실이 드러나면 심하게 구타하고 며칠간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게 했다는 것.

탄광 막장에서는 무장 감시병들이 수시로 동태를 감시하다 몸이 아파 잠시 쉬기라도 하면 욕설을 퍼붓고 구타하는 것은 물론 추운 겨울에 팬티만 입혀놓고 석탄덩어리를 입에 물리는 체벌을 가했다.

또 목욕탕이 없어 막장에서 사흘간 일하고 나와도 겨우 세수만 하고 석탄가루가 뒤덮인 작업복을 6개월 이상 그대로 입어야 한다.

소속 직장에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말단 책임자인 작업반장으로도 임명되지 못한다고 양씨 등은 증언했다.

국군포로는 탄광에서 일하는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들도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기 힘들다. 또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어 부모처럼 대를 이어 탄광 막장에서 채탄작업을 해야 한다.

실제로 양씨는 국방위 증언을 통해 “두 사위가 탄광 막장에서 일하다 숨졌고 딸들이라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살아있는 포로들마저 약 5년만 지나면 모두 죽게 된다”며 “포로 2세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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