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변호사들 「즐거운 비명」…구조조정관련 업무 폭증

  • 입력 1998년 10월 11일 19시 08분


‘의뢰인’‘펠리칸브리프’ 등의 소설로 유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작가 존 그리샴이 91년 터뜨린 첫 베스트셀러의 제목은 ‘더 펌(The Firm)’.

여기서‘펌’은‘로펌(Law Firm)’을 지칭. 우리말로 하면 법률회사나 법무법인. 병원으로 치면 종합병원이다. 당시 국내에는 로펌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았던 탓인지 의도적인지 모르지만 번역본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는 엉뚱한 제목이 붙었다.

하지만 IMF사태 이후 인수합병 등 기업간 대규모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경제전쟁의 첨병으로 활약하는 로펌의 주가는 급상승 중.

국내 최대로펌인 김&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김도영변호사(30). 다른 로펌의 변호사들처럼 곧잘 샌드위치나 주문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점심값을 아끼려는 게 아니다.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신참 로펌변호사의 초봉이 월5백만원, 입사 8년 이상된 시니어변호사의 연봉은 대략 1억∼3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국물없는 점심’을 시켜먹는 이유는 너무 바빠 점심시간에 회의를 하거나 서류를 검토해야 할 일이 많은 탓.

김변호사는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인 지난해 12월엔 화의 법정관리신청 등이 쏟아져 한달 내내 서울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하루 평균 12시간 씩 일했다”고 설명.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3∼5명이 팀을 이뤄 호텔에 틀어박혀 작업한다는 것.

로펌 변호사들의 주된 업무는 컨설팅과 의견서 작성. 기업은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하지만 로펌은 법적인 시각에서 딜(deal)을 완성.

대형 인수합병이 활발한 요즘은 수억달러짜리 계약도 종종 있다. 이런 거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기업관계자들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상담해주고 관련 서류를 작성.

로펌에서는 시간이 돈. 시간당 10만∼30만원선의 상담료가 고객에게 청구되며 전화상담에도 예외는 없다. 고객은 국내외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종교단체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재벌은 2,3개 로펌과 중복계약하고 있다.

운동권출신으로 올해 처음 로펌에 들어온 임성택변호사(35·법무법인 세종)는 “법조인은 벌어진 사건을 ‘정리’하는 수가 많은데 로펌변호사는 생산적인 일의 맨 앞에 나선다는 점이 맘에 들어 로펌을 택했다”고 설명.

로펌의 사건은 그림으로 치면 거대한 벽화에 해당하는 대형사건들. 따라서 변호사간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각 파트별로 파트너 또는 시니어라고 부르는 고참변호사 밑에 입사 5년 이하의 주니어변호사 4,5명이 팀을 이룬다.

대형로펌에서는 경력 5년 정도된 변호사를 미국 주요 로스쿨에 유학 보내준다. 이들이 2년여 후 학업과 실무견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시니어변호사로 대접. 처음 입사한 열명 중 한두 사람만이 살아남는 미국의 로펌에 비하면 상당히 관대한 편.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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