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구직현장 방문 취재]『초보자 누가 쓰나』퇴짜

  • 입력 1998년 6월 14일 19시 40분


《‘몸만 성하고 부지런하다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상식조차 흔들리는 심각한 실업난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6개월을 맞은 우리 사회의 일자리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두 명은 막노동 일거리 ‘공급량’을 파악하고 날품팔이 현장기를 쓰기 위해 ‘단순노동’ 일감을 찾아 사흘간 1백여군데를 돌아다녀 봤지만 허사였다. 공사판조차도 무경험자는 넘보기 어려운 일터였다. 또 농촌같은데서 용케 하루 2만원 정도 벌이의 일거리를 얻을 순 있을지 모르지만 일당 중 숙식 교통비를 해결하고 나면 단순 노동자의 임금으로는 가족 부양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 9일 ▼

오전7시 가방을 챙겨 찾아간 서울 용산역 주변의 J직업소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6평 남짓한 사무실에 10여명의 30,40대 일용직 근로자들이 한쪽에서 벌어진 포커판 구경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자리를 문의하자 소장은 “10년경력의 ‘베테랑’도 노는 마당에 당신같은 초보자에게 무슨 일자리가 있겠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난해말 한 중소업체에서 실직한 뒤 소개소 주변 여인숙에서 월15만원짜리 자취를 하며 잡부일을 나가는 이모씨(50)는 “지난 6개월간 일한 날이 한달도 안되고 가족들 보기도 미안해 집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오전 내내 역 주변 4곳, 영등포 일대 5곳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지만 대답은 마찬가지.

영등포역 앞 H소개소에서 같은 처지의 신모씨(28)를 만났다.

2년 전 전문대를 중퇴한 신씨는 “얼마전 1백7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9급 공무원시험을 쳐 떨어진 뒤 먹고 살기 위해 군산에서 무작정 상경했다”고 털어놓았다.

“전철역에서 새우잠을 자고 노동일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20여군데를 돌아다녔지만 허탕쳤다”며 한숨짓는 신씨와 함께 용산역 앞 무료급식소를 찾아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1시 서울역 구내 실직자 상담소. 이곳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상담원들이 실직자 취업알선을 하고 있었다.

취재기자가 상담 후 소개받은 일당 3만원짜리 배달원 금고수납원 창고와 주차장관리 전화외판원 등 10여군데 업체에 전화문의를 했지만 이미 구했다는 대답뿐. 한 자원봉사학생이 “하루 20여명을 상담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서울 영등포의 남부 노동사무소를 찾아 20여명의 구직자 사이에 섞여 구직신청을 했다.

대부분 젊은 대졸자나 실직자들을 위한 전문기술이나 고학력자를 위한 정보였고 당장의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일용직은 드물었다.

▼ 10일 ▼

오전4시 서울 봉천동 인력시장.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각 50여명의 40,50대 구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일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5시가 되자 건설현장에서 일꾼을 찾기 위해 나온 작업반장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속속 택시나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작업반장에게 일감을 부탁하자 “당신같은 초보자가 몰리던 인력시장은 사라진지 오래”라며 “연락처를 남기면 자리가 생길 때 알려주겠지만 무경험자는 기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한편.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이 나와 농촌 일손을 신청받고 있었다. 농협지부에서 알선하는 농가에서 일하면 일당 2만원과 점심을 제공한다는 내용.

그러나 경기 하남시 등을 찾아 확인한 결과 교통비와 숙박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요즘같은 불황에 외부인력을 쓸 일거리가 사실상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S농협 이모부장은 “신청농가가 없고 20여명의 신청자 가운데 농가와 연결된 사람은 한명도 없다”며 “일당 2만원에 교통비를 부담하면서 이곳까지 와서 일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딱하다는 듯 반문했다.

정오 무렵 찾아간 서울 구로공단과 성수공단은 명절 때처럼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에도 다니는 공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전신주나 구직판에서는 구인광고 한장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내내 도금 염색 전자부품 제조업체 등 10여군데를 돌아다녔지만 “기술이 있어도 노는 사람이 남아돈다”며 “헛수고하지 말고 인력시장이나 찾아가서 공사판이나 알아보라”는 냉담한 반응.

▼ 11일 ▼

구직 사흘째인 11일 오전 1백여개의 도금염색공장이 밀집한 인천 남동공단. D금속 B케미칼 K산업 등 20여군데의 도금염색업체를 찾아가 월급을 깎아도 좋으니 취직만 시켜달라고 애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매출이 50% 이상 준데다 수입원료까지 폭등해 죽을 맛”이라며 “있는 사람도 잘라내는 판에 새로 사람을 쓸 여유가 전혀 없다”며 딱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루종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공단 일대를 헤매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온 시간이 오후 7시.

사흘째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일당거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구직현장의 실태를 절감하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서울역 노숙생활 2개월째인 김모씨(32·전직 공사판 잡부)는 “일자리를 구하러 안가본 데가 없다. 공사현장도 씨가 말랐고 실업급여도 못받는 처지라 무료급식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윤상호·이완배기자〉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