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노선수정 배경]「등돌린 민심」위기감 확산

  • 입력 1997년 4월 5일 20시 21분


한총련 지도부가 『정치투쟁을 지양하고 합법적인 운동영역을 넓혀 가겠다』고 선언, 변신을 시도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고는 한총련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됐다는 상황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생존」을 위한 일종의 자구책인 셈이다. 한총련의 자체적인 변신 모색은 우선 지난해 8월의 「연세대사태」이후 급격히 악화한 국민여론을 의식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냉엄한 현실 인식이다. 연세대사태에 뒤이은 지난해 9월의 강릉 무장간첩 침투사건과 지난 2월의 黃長燁(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 망명사건 등은 통일의 명분아래 정치투쟁을 지향해온 한총련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이같은 상황변화 속에서 한총련에 대한 일반학생들의 무관심과 노선 비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비운동권출신이 학생회장에 당선된 연세대는 지난 2월 2천만원에 이르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호남대와 홍익대에서는 학생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한총련집회를 막았다. 한보특혜 대출비리와 金賢哲(김현철)씨 비리의혹사건을 계기로 한총련이 국면전환을 노려 시도했던 「김영삼정부 퇴진을 위한 동맹휴학」도 무산됐다. 한총련은 이러한 현실의 벽에 떼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변신의 몸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 과거와 같은 정치일변도의 투쟁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역적 현안이나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겠다는 것. 이는 종전의 운동방향이 한총련의 좌익 친북이미지만을 국민에게 심어줬을 뿐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반성에 근거한 것이다. 둘째, 운동방식도 과격시위중심에서 탈피해 피케팅 등 합법적인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것. 대규모 집회는 물리적 충돌을 야기해 여론의 비난만 자초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총련의 진정한 변화를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한총련이 운동목표나 기본노선까지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 한총련은 여전히 반미자주화와 연방제통일을 최종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北―美(북―미)평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등을 외치고 있다. 단기적인 투쟁목표를 「김영삼정권 임기내 퇴진」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한총련의 변신 시도는 자신에 가해지는 비판을 피해보려는 방편일 뿐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결국 한총련이 운동노선과 방법을 어떻게 어느 정도 수정해 나갈지가 향후 학생운동의 명운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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