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연변 떠도는 탈북자들]

  • 입력 1996년 12월 26일 20시 24분


<<목숨을 걸고 북한 국경을 넘는 탈북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극심한 식량난으로 굶주리다 못해 북한 땅을 도망쳐 나오는 「경제난민」들이다. 이들 중 일부만이 운좋게 한국으로의 망명에 성공한다. 그동안 우리는 망명에 성공한 탈북자들만 주목해온 게 현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을 떠돌아 다니거나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돼 가는 북한동포가 한둘이 아니다. 중국 현지취재를 통해 탈북자들의 실태와 그 대책을 점검해본다.>> 「延吉〓李炳奇·孔鍾植기자」 『탈북자가 마을에 들어오면 순순히 식량을 내줄 것』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들은 「조선도 잘 살 날이 꼭 온다.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한국말을 외워 두었다가 탈북자가 오면 말할 것』 이달 초 중국정부가 중국과 북한접경지역에 사는 중국인과 조선족에게 배포한 「탈북자대응 행동지침」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탈북자문제로 중국당국이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한가지 단서다. 실제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있는 마을들은 최근 북한인들이 줄지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몰래 건너와 식량을 훔치는 등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매일밤 떼지어 식량구걸 북한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땅으로 오기 시작한 것은 약 3년전부터이나 특히 올들어 크게 늘어나 급기야는 중국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하는 지경이 됐다. 현재 탈북자 수는 정확히 집계할 방법이 없으나 중국 공안당국은 연간 1천∼2천명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생각하듯 정치적인 망명은 아니다. 밀가루 한포대, 쌀 한줌이라도 얻기위해 말 그대로 생존권차원에서 건너오는 「경제난민」이라고 봐야한다는 게 현지 조선족 교포들의 공통된 말. 방촌 경신 숭선 남평 삼합 장백 단동 등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둔 국경지역 각 마을에는 거의 매일 밤 탈북자들이 혼자 또는 여러명씩 떼지어 강을 건너와 식량을 구걸해간다. 강이 얼어붙기 시작한 11월부터는 그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최근 김경호씨 일가족 탈출사건 이후 북한 국경수비대가 대폭 증강됐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 국경지역 마을사람들의 말. 『어젯밤에 북한 사람이 와서 옥수수 한다발을 가져갔다』 『밥을 줬더니 다섯그릇이나 먹고 가더라』 『북한 담배 한갑 가지고 와서 쌀과 바꾸자고 해서 할 수 없이 쌀한말을 줬다』 『연길 나가는 길을 물어봐서 가르쳐주고 중국옷으로 갈아입혀 줬다』 국경지역주민들이 하룻밤을 새고나면 서로 주고받는 말이다. 연길 용정 화룡 등지에 친척이 있는 탈북자들은 어렵게 강을 건넌 뒤 무려 10∼20시간을 걸어서 친척집까지 찾아 온다. 연길시 조선족사이에서 유력인사로 통하는 김모씨(51·한의사)집에 지난 21일 새벽6시경 평양에 사는 조카(18)가 불쑥 찾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던 조카는 잠이 들었다. 김씨는 조카가 잠든 사이 조카가 가져온 밀봉된 편지를 뜯어보았다. 평양의 형이 보낸 이 편지는 『아들한테는 잠깐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여기 식량난이 심각해서 애를 보냈으니 아들에게 편지 내용을 설명하고 당분간 연길에 데리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강폭 좁은곳 10∼20m불과 『분필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다. 배가 고파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 수업진행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평소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대학강단에서 일하고 있는 형. 동생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하지 않던 자존심 강한 그 형이 친필로 쓴 편지였기에 북한 현지의 사정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다음날 아침 조카에게 편지내용을 설명하고 『여기에 남아 있으라』고 했더니 조카는 『나 혼자 살자고 여기 남아있을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버텼다. 할 수 없이 인민폐 1만원(한국돈 1백만원)을 융통해 『1월중순 쌀을 마련해 방문할테니 그때까지만 어떡하든지 참고있으라』는 편지를 들려 다시 북한으로 돌려 보냈다. 북한에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사람들에게 김씨의 경험은 드문 일이 아니다. 주위의 눈이 두려워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흉허물이 없는 사이끼리 모이면 간밤에 다녀간 북한친척이야기를 나누며 친척들 걱정을 하곤 한다. 탈북자들의 75%이상이 일주일 이내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중국정부의 분석이다. 사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을 직접 가보면 왜 탈북이 쉽게 가능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두만강 하류지역인 방촌 삼합 숭선 남평지역에는 강폭이 좁은 곳은 10∼20m에 불과했고 대부분 강이 얼어있었다. 결국 국경수비대의 눈만 피하면 별다른 어려움없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와 아예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머무는 사람도 상당수. 지난해 10월 회령에서 몰래 넘어온 장모씨(43)는 연길의 동생집에 머물면서 동생의 도움으로 인민폐 1천원(한국돈 10만원)을 주고 성형수술까지 했다. 북한측 사회안전원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장씨는 연길시 시장에서 명태장사를 하다가 금년 8월 조선족 교포 이혼남 이모씨(48)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 이씨가 뇌물을 써서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증까지 만들어줬지만 그것도 안심이 안돼 장씨는 남편과 함께 지난 9월 러시아로 이민을 갔다. 탈북자 중 남자들은 북한 국적을 유지한채 중국에 살고있는 조교(朝僑)들이 우글거리는 길림성을 피해 대부분 흑룡강성 요령성으로 들어가 농촌에서 품팔이를 하고 여성들은 식당종업원이나 보모로 일하며 은신하고 있다. ▼여자귀해 北처녀 환영 북한의 젊은 처녀들이 국경을 건너와 농촌의 조선족 남성들과 결혼해서 살고있는 경우도 많다. 급격한 경제개발을 겪고있는 중국농촌 역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도시로 나가버려 여자가 귀해 탈북한 북한여성들은 환영을 받는다는 것. 현재 중국에서 떠돌아다니는 탈북자 수는 약 3천명(중국당국 추정). 이 중 아예 처음부터 한국을 목적지로 정하고 탈북한 사람은 전체 탈북자의 5%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북한에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인텔리들이거나 김경호씨 일가족처럼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목숨을 걸고 탈북에는 성공했지만 한국망명이 이뤄지지 않아 중국을 못 벗어나고 심천 대련 등 홍콩과 가까운 항구에서 밀항을 꿈꾸는 탈북자가 적지 않다. 북한을 무사히 탈출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북한간에는 외교협정이 맺어져 북한측의 요구가 있을 경우 중국당국은 탈북인을 붙잡아 북한에 넘겨줘야 한다. 올봄 화룡시에서 공안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일가족 3명의 이야기는 조선족 교포들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져 있다. 지난해 9월 아내와 아들(8세)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한 박씨(38)일가족은 용정시의 형에게 찾아왔다. 형은 즉시 이웃 조선족 마을 빈 농가에 동생 가족의 거처를 마련해줬고 마을 사람들도 박씨 일가를 도왔다. 그러나 박씨일가의 소식이 인근마을 조교의 귀에 들어갔고 북한측은 정식으로 중국측에 박씨일가의 체포를 의뢰했다. ▼동생 잡힌뒤 형 화병 숨져 결국 박씨일가는 중국 공안과 북한측 사회안전원에 의해 끌려갔고 마을사람들이 국경까지 따라와 사정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북한측이 탈북자들을 데려갈 때 탈북자들의 몸을 철사줄로 묶는 것을 『아이에게만은 하지말아달라』고 사정했지만 북한 사회안전원은 들어주지 않았다.이 광경을 지켜본 박씨의 형은 한달 뒤 화병으로 사망했다. 중국정부측은 두만강과 압록강이 얼기 시작한 올 11월부터 12월까지 두달동안만도 5백여명이 국경을 넘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측은 북한측의 경비가 강화되지 않을 경우 춘궁기인 내년 3월경에는 굶주림으로 인한 대규모의 탈북사태가 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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