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서총련간부 조사서 드러난 「延大사태」

  • 입력 1996년 11월 6일 20시 42분


지난 8월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농성 당시 「과학관 대탈출」에 앞서 미리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한총련 의장 鄭明基씨(24) 등 한총련 지도부는 일반 학생들과 함께 연세대 과학관 뒷문을 이용해 달아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달 28일 세종대에서 검거된 서총련 의장 朴炳彦씨 등 서총련 중앙집행위원회 간부 14명에 대한 경찰의 조사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鄭씨 등 지도부들은 경찰이 종합관을 진압한 뒤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과학관 뒷문을 통해 서문으로 빠져 나갔다』며 『朴씨는 경찰의 시선을 끌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한뒤 서문쪽 뒷길을 따라 연희동 동교동을 거쳐 홍익대로 피신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애초 이들은 경찰진압 이틀전인 18일 오후 무악산방향으로 도주가 가능한 북문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19일 朴一龍 경찰청장의 총기사용발언 이후 서문으로 탈출하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한총련 지도부들은 8월17일까지 과학관 6층에서 일괄지휘를 했으나 경찰의 봉쇄가 강화되자 종합관에 별도의 집행부를 구성, 학생들을 지휘했으며 15일 이후 매일 비상회의를 열어 투쟁 및 탈출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한총련 지도부가 풍선기구내에 장시간 숨어있다가 연세대내 지하통로를 이용, 진압작전 이후 교내를 빠져나갔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朴씨는 서울 근교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경찰의 추측과는 달리 70여일 동안 홍익대 국민대 등 서울시내 8개 대학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해왔다. 특히 朴씨는 홍익대가 연세대와 가깝고 최근 시위가 거의 없어 경찰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있다고 판단, 50여일 동안 장기간 주요 은신처로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朴씨는 각대학 총학생회로부터 59만원을 도피자금으로 받아 검거 당시 18만원을 갖고 있었으며 이동시 대부분 택시를 이용했으며 변장은 하지 않았다. 또 朴씨 등 2명을 제외하고 12명이 2∼4개의 가명을 사용하며 계속 각종 집회를 주도했으며 신변안전을 고려해 중요사항의 전달은 전화나 팩스 등을 이용하지 않고 인편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구속된 13명중 5명이 연세대 사태 이후 경찰에 검거, 조사를 받고도 불구속 입건된 뒤 풀려났거나 훈방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李浩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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