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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봉](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9/05/6869999.1.jpg)
지금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양화선착장 일대의 260년 전 모습이다. 이 곳에는 선유봉(仙遊峯)이라는 매혹적인 산이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 <21>이수정(二水亭)](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8/29/6869240.1.jpg)
이수정은 서울 강서구 염창동 도당산(都堂山·지금의 증산) 상봉에 있던 정자다. ‘양천군읍지’에 이런 기록이 있다.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20>소요정](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8/22/6868511.1.jpg)
소요정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 남쪽 기슭에 있던 정자인데 고종 28년(1891)에 편찬된 ‘양천현읍지’에 이미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9>개화사(開花寺)](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8/15/6867831.1.jpg)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 332의 12에 있는 개화산 약사사의 겸재 당시 모습이다. 그때는 주룡산(駐龍山) 개화사(開花寺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8>양천현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8/08/6867219.1.jpg)
겸재가 영조 16년(1740) 초가을 양천현령으로 부임할 당시 양천현 관아의 모습이다. 양천읍지에 ‘동헌 종해헌(
소악후월](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8/01/6866532.1.jpg)
소악후월(小岳候月)은 소악루에서 달뜨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겸재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그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6>소악루(小岳樓)](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7/25/6865899.1.jpg)
소악루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성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이다. 전라도 동복(同福) 현감을 지낸 소와 이유(笑窩 李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5>종해청조](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7/18/6865123.1.jpg)
종해헌(宗海軒)은 양천현(陽川縣·지금의 강서구) 관아의 동헌(東軒·지방 수령의 집무소) 이름이다. 그러니 ‘종해청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⑭]안현석봉](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7/11/6864399.1.jpg)
안현은 안산(鞍山) 또는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르는 서울의 서쪽 산이다. 봉원사(奉元寺)와 연세대 및 이화여대를 품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⑬]목멱조돈](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7/04/6863650.1.jpg)
목멱산은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이다. 남쪽 산을 뜻하는 순 우리말 ‘마뫼’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마뫼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⑫]금성평사](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6/27/6862900.1.jpg)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 등이 들어선 난지도(蘭芝島) 일대의 262년 전 모습이다. 원래 이곳은 모래내와 홍
공암층탑(孔巖層塔·공암의 층진탑) 공암(孔巖)은 양천(陽川)의 옛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주군현(州郡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⑪]공암층탑](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6/20/6862125.1.jpg)
공암(孔巖)은 양천(陽川)의 옛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주군현(州郡縣)의 이름을 한자식으로 고칠 때 이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⑩]양화환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6/13/6861228.1.jpg)
양화진(楊花津)은 서울 마포구 합정(合井)동 378의 30에 있던 나루다. 한양(서울)에서 김포 부평 인천 강화 등 당시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⑨]압구정](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02/06/06/6860356.1.jpg)
압구정은 강남구 압구정동 산 310에 있던 정자다. 남쪽에서 우면산 자락이 밀고 올라와 북쪽의 남산 자락인 응봉(鷹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