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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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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30>휴전선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30>휴전선

    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 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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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9>내게는 그분이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9>내게는 그분이

    내게는 그분이 ―사포(기원전 625년 무렵∼기원전 570년 무렵) 내게는 그분이 마치 신처럼 여겨진다. 당신의 눈앞에 앉아서 얌전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 남자분은. 당신의 애정 어린 웃음소리에도 그것이 나였다면 심장이 고동치리라. 얼핏 당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미 목…

    •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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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8>탐구생활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8>탐구생활

    탐구생활 ―이진희(1972∼ ) 나는, 나는 매일 나는 애벌레거나 곤충의 상태인 듯한데 밤이면 짐승이나 꿀 법한 꿈에 시달리면서도 한낮에는 천연덕스럽게 꽃이나 나무의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간신히 성장하는 기분, 도무지 나는 무얼까 어떤 숙제도 제대로 한 적 없는데 어떤 통과의…

    •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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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7>벗어놓은 스타킹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7>벗어놓은 스타킹

    벗어놓은 스타킹 ―나희덕(1966∼ )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

    •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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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6>슬픔의 빛깔―보육원 아이 정아에게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6>슬픔의 빛깔―보육원 아이 정아에게

    슬픔의 빛깔―보육원 아이 정아에게 ―김민자(1962∼ ) 반짝이는 것들에게는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슬픔이 있어 길을 걷다 보면 늘 온전한 것보다 부서지고 깨진 것들 훨씬 반짝거려 강물이 그렇듯 반짝이는 것도 부서지고 깨진 돌멩이 강바닥에 모여 있기 때문일 거야 떠나온 곳에서 한…

    •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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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5>산에가는이유,의역사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5>산에가는이유,의역사

    산에가는이유,의역사 ―박의상(1943∼) 산에 갔지 처음엔 꽃을 보러 갔지 새와 나무를 보러 갔지 다음엔 바위를 보러 갔고 언제부턴가 무덤을 보러 갔지 그리고 오늘부터는 저것들 보자고 산에 가지 산 아래 멀리 저어기 강가의 새 도시에 우뚝 선 것들, 번쩍이고 으르렁대는 세상에, 저…

    •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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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4>등대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4>등대

    등대 ―김선굉(1952∼ ) 저 등대를 세운 사람의 등대는 누가 세웠을까. 물의 사람들은 다 배화교의 신자들. 폭우와 어둠을 뚫고 생의 노를 저어 부서진 배를 바닷가에 댄다. 등대 근처에 아무렇게나 배를 비끄러매고, 희미한 등불이 기다리는 집으로 험한 바다 물결보다 더 가파른 길을 …

    •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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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3>서귀포 오일장에서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3>서귀포 오일장에서

    서귀포 오일장에서 ―김지윤(1980∼ ) 매일 비워졌다 또 밀물 차오르는 모래톱처럼 닷새마다 꼬박꼬박 열리는 오일장 가을감자 파는 좌판 할머니 앞에서 한 푼, 두 푼 버릇처럼 감자 값을 깎다 하영 주쿠다(많이 줄게요), 하며 감자 자루 내미는 부르튼 손 검은 흙 낀 손톱 보며 할머…

    • 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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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2>연인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2>연인

    연인 ―폴 엘뤼아르(1895∼1952)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의 모양을 가졌다, 그녀는 내 눈의 빛깔을 가졌다, 그녀는 내 그림자 속에 삼켜진다. 마치 하늘에 던져진 돌처럼. 그녀는 눈을 언제나 뜨고 있어 나를 잠자…

    •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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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421>우리 아들 최 감독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421>우리 아들 최 감독

    우리 아들 최 감독 ―최형태(1952∼ ) 전공인 영화를 접은 둘째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바리스타에 입문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찍고 개막작으로 뽑히고 하길래 영화감독 아들 하나 두나 보다 했는데 영화판에는 나서볼 엄두도 못 내고 여기저기 이력서 내고 면접도 보러 다…

    • 201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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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0>철거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20>철거

    철거 ―김록(1968∼ ) 24톤의 집이 무너졌다 지은 집이 폐기물이 되는 데 33년이나 걸렸다 무너진 곳을 가보니 인부가 감나무터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다 오래된 뿌리에, 무엇을 들이대며 거름도 되지 못할 그 같은 짓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성(誠), 인(仁), 인(忍)을 …

    • 2015-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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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9>납작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9>납작

    납작 ―정다운(1977∼ ) 은퇴한 아버지는 유명 카페 가맹점을 냈다 커다랗고 똑같은 간판이 싫단다 하지만 아무도 간판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앱을 이용하지 어쩌다 한 번 이메일을 받았다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어도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말 널 치면 네가 다니는 회사 네가 먹은…

    •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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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8>물의 결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8>물의 결

    물의 결 ―박우담(1957∼ ) 1 너는 노를 젓고 있다 물을 노크하고 있다 너는 물을 벗겨내고 있다 노를 저어 물의 척추를 간질이고 있다 척추는 고요를 깨트리고 있다 입에 재갈을 물린 듯한 템포 빠른 호흡을 하고 있다 너는 노를 젓고 있다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나아갈 방향으로 …

    • 20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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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7>아아,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7>아아,

    아아, ―박소란(1981∼ ) 담장 저편 희부연 밥 냄새가 솟구치는 저녁 아아, 몸의 어느 동굴에서 기어나오는 한줄기 신음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 알을 집어들고 얼마예요 묻는다는 게 그만 아파요 중얼거리는 나는 엄살이 심하군요 단골 치과에선 종종 야단을 맞고 천진을 가장한 표정으로 …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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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6>제4과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6>제4과

    제4과 ―김형영(1945∼ ) 제 1과, 끝끝내 덜 된 집 제 2과, 단번에 깨친 듯 거침없는 바람 제 3과, 흥에 겨워 허구한 날 노래하는 나무 이 세 귀신(鬼神) 사이에 끼어보려고 반평생 기웃거리며 살았는데 끝끝내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다가 숨 몰아쉬기도 힘든 그날이 다가와 …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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