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0대 국회, ‘87년 체제’ 바꿀 개헌논의 시작해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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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어제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 언제까지나 개헌을 외면할 수는 없다”며 개헌론을 공식 제기했다. 정 의장은 개헌의 목표를 국민 통합으로 제시하면서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의장이 개원 일성(一聲)으로 개헌론에 불을 붙인 것은 대통령선거를 1년 반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6개 사회단체 연합체인 국가전략포럼도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의 특강을 열었다.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5년 대통령 단임제를 30년간 시행하며 6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 없다”며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선되고 나면 더는 민심을 살필 필요가 없다는 오만과 5년 안에 치적 쌓기에 급급한 정책, 필연적 레임덕과 퇴임 후를 대비한 대못 박기 등이 대통령들을 불행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개원 연설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에 대해 ‘국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본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32.7%) 또는 차기 정부(41.1%)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4·13총선 민의가 만든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는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바꾸라는 경고등이다. 대통령도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 만큼 이제는 판을 바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나누고, ‘제왕적 국회’의 책임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과거 이명박, 박근혜 후보처럼 강력한 미래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개헌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은 차기 주자가 안 보이는, 사실상 불임(不姙) 상태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끊임없이 ‘반기문 대통령, 친박 실세 총리’를 염두에 둔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나오는 이유다. 개헌론을 제기한 정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개헌을 전제로 한 ‘대선 결선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임기 후반 대통령의 개헌 추진은 ‘권력 연장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만큼 20대 국회 주도로 개헌의 큰 그림을 논의해 볼만하다.
#정세균 국회의장#20대 국회#87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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