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당직 아니어도 역할”… 조용한 행보 접고 대선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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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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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대통령-박근혜 前대표 10개월 만에 단독회동

화기애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유럽 특사 방문 보고를 겸해 이뤄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은 지난해 8월 21일 이후 10개월 만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화기애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유럽 특사 방문 보고를 겸해 이뤄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은 지난해 8월 21일 이후 10개월 만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 후 브리핑에서 ‘민생’과 ‘통합’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유력한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가 이번 회동을 계기로 서서히 정치 보폭을 넓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박 전 대표, 기지개 켜나

박 전 대표는 이날 “성장의 온기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와닿도록 해 달라” 등 당 안팎의 여론을 이 대통령에게 상세히 전달했다. 민생 이슈와 관련해 할 얘기를 수첩에 빼곡히 적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건의에 이 대통령도 적극 호응했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설명이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당과 나라를 위해) 힘써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당내 역할에 대해 (대통령의) 구체적인 요청이 있었느냐”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하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날짜를 박아 말할 순 없지만, 당직이 아니더라도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조용한 행보’를 이어 왔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두 사람이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 어느 정도 속마음을 나눴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친박(친박근혜)계 내에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대선을 1년 5개월 앞둔 2006년 7월부터 대선 행보에 들어간 만큼 박 전 대표도 구체적인 대선 일정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 대선주자로서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정치 행보에 나서더라도 7·4 전당대회와 당권 경쟁 등 정치권 내부의 이슈보다는 물가와 전세금,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민생 이슈를 챙기는 정치 지도자의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날 이 대통령에게 등록금 부담 완화 등 민생 문제 해결을 여러 차례 요청한 것은 자신이 내년 총선에서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북한 문제(남북 비밀접촉 폭로 파문)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조만간 정부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잘못 알려진 게 많다”고 했다.

앞으로 정치 현안에 대해선 자기 목소리를 내더라도 남북문제나 외교 등 외치(外治)는 큰 틀에서 협조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다만 청와대는 “(대국민 설명을 위한)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 직접 브리핑 나선 박 전 대표

친박계는 일단 만족하는 분위기다. 독대시간이 55분으로 2009년 9월 박 전 대표의 유럽 특사 보고 때(43분)보다 길었다. 박 전 대표도 할 얘기를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회동 후 참모진과의 대화에서 “박 전 대표도 표정이 참 좋던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두 사람의 회동은 정치적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정권 재창출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독대 내용을 자신이 언론에 알리겠다고 청와대에 먼저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를 떠나면서 “브리핑은 대표님께서 하지시요?”라고 묻는 청와대 참모에게 “(이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 안 계셨으니 대화 내용을 모르시잖아요”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7차례 공식 비공식 단독 회동을 했지만 박 전 대표가 직접 브리핑을 한 것은 2008년 5월 탈당한 친박 진영의 한나라당 복당 문제를 놓고 양자회동을 했을 때뿐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2012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성공 기원 팝콘서트를 관람하기에 앞서 ‘앞으로 행보에 길을 터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는 기자들의 물음에 “간담회를 한 시간 가까이 했는데 자꾸 얘기하면 오히려 왜곡될 수 있다”며 입을 닫았다.

한편 친이재오 성향 의원들은 “이날 회동으로 박 전 대표 진영과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재오 특임장관과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6·3동지회’ 만찬을 열었다. 6·3동지회는 1964년 박정희 정권 당시 6·3한일회담 반대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대표들의 모임이다. 이 대통령과 이 장관은 악수를 했으나 별다른 대화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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