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격훈련 이후]본보 기자, 긴장속 연평도 대피호에서 지내보니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추위에 떨고…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상 사격훈련이 실시된 20일 긴급 대피령에 따라 인근 대피소로 피신한 주민들은 포 사격 소리를 들으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추위에 떨고…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상 사격훈련이 실시된 20일 긴급 대피령에 따라 인근 대피소로 피신한 주민들은 포 사격 소리를 들으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연평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웬만한 강추위가 아니면 잘 꺼내 입지 않던 내복도 입고 겉옷 역시 점퍼까지 네 겹을 껴입는 ‘중무장’을 했다. 20일 오전 9시경 연평도에 주민 대피령이 떨어지고, 곧이어 주민 대피방송이 흘러나오자 기자는 현지 대피 상황을 취재한 뒤 숙소로 쓰던 민박집에서 가장 가까운 송신탑 옆 대피소로 뛰어 들어갔다. 입구에서 인원 파악을 하던 군인들이 “대피호가 무너질 때는 가운데 천장부터 무너지니 벽 쪽으로 최대한 붙어 앉아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연습’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이 뼛속까지 전해졌다.

○ 좁고 추운 대피소

흰색으로 칠한 철근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대피소는 26.4m²(약 8평) 남짓한 넓이였다. 어른 20명이 다리를 뻗고 눕기에도 버거운 공간에 어른 38명이 모였다. 모두가 벽에 둘러앉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바닥에는 두께 10cm 정도의 플라스틱 발판을 깔고 그 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줄 스티로폼을 놓았다. 하지만 스티로폼이 깔린 면적은 대피소 전체의 절반 정도.

구호품으로 준비된 선풍기형 전열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찬 공기는 천장에 뚫려 있는 통풍구에서도 계속 들어왔다. 주민 이기옥 씨(50·여)가 실내의 찬 공기를 덥히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내친김에 컵라면을 뜯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3개뿐이어서 38명이 라면 하나씩을 받아 드는 데는 30분이 넘게 걸렸다. 소방관들이 “컵라면이 아니라 바로 먹을 수 있는 빵 같은 음식을 갖다 놓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자식들이 우리 걱정을 할 텐데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 답답했다”며 “구조요청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전화기라도 한 대 설치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94분, 극도의 긴장감

대피소에 들어온 지 3시간이 지나자 긴장감보다는 답답함이 더 느껴졌다. 노인들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대피령이 발령된 지 4시간 55분이 지난 오후 1시 55분, 지금까지 대피호 밖을 경계하던 하사관 두 명이 대피소로 들어온 뒤 무거운 철문을 닫았다. “잠시 후 사격이 실시됩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는 ‘북한이 또 포를 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불안에 떨고… “할머니는 잘 있으니 걱정 마.”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상사격훈련이 실시된 20일 오후 긴급 대피령에 따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대피소에 주민들이 모였다. 한 주민이 손자에게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연평도=사진공동취재단
불안에 떨고… “할머니는 잘 있으니 걱정 마.”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상사격훈련이 실시된 20일 오후 긴급 대피령에 따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대피소에 주민들이 모였다. 한 주민이 손자에게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연평도=사진공동취재단
“쿵.” 크진 않지만 폭발음은 뚜렷했다. 오후 2시 반. 사람들이 숨 죽인 채 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3발의 포성이 추가로 들렸다. 이후 30여 분이 지나 포성이 다시 귀청을 때렸다. “또 쐈다.” “이번엔 여러 대가 쏜 모양이네. 소리도 크고 진동도 느껴져.” 1, 2분 간격으로 쿵 쿵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누군가가 한두 마디씩 덧붙였다. 1시간 동안 이어진 포 소리는 오후 3시 반이 되면서 그쳤다. 하지만 누군가 “끝난 모양이다”라고 말하기 무섭게 ‘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벌컨포 사격이었다. 대피소에서 더 이상 포격 소리가 들리지 않은 때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무전을 받고 밖으로 나간 하사관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그 종이에는 “오후 4시 4분 사격훈련 종료”라고 쓰여 있었다.

긴장감은 한순간에 풀어졌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사관들은 “언제 내보내 줄 거냐”는 주민들의 재촉에 시달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오후 6시 반. 드디어 군인들이 철문을 활짝 열었다. “혹시 돌발 상황이 생기면 즉시 돌아오셔야 합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당부하면서 주민들을 돌려보냈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