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병’ 재발한 한나라, 이번에도 응급 봉합?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냉랭한 두 대표의 만남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가 20일 미디어관계법 직권상정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는 정세균 대표를 방문해 단식을 거둬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냉랭한 두 대표의 만남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가 20일 미디어관계법 직권상정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는 정세균 대표를 방문해 단식을 거둬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미디어법 통일된 움직임 박근혜 한마디에 비틀
“비협조 꼬리표 붙을라”친박진영 일단 ‘불끄기’

한나라당이 핵심 쟁점법안인 미디어관계법 국회 처리를 앞두고 적전분열(敵前分裂)하는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9일 “미디어법을 당장 직권상정한다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한 발언이 집권 여당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민주당과 정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이 같은 내부 파열음은 거대 여당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이날 한마디는 친이계와 친박,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된 채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는 공룡 여당의 구조적인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찬물 끼얹은 박근혜 발언

박 전 대표가 19일 ‘반대표 발언’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친박(친박근혜)은 물론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도 한목소리로 미디어법 처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번 임시국회 초반부터 친박과 개혁파 의원들을 일대일로 접촉하며 법안처리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의원총회에서 ‘여야 합의대로 6월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표결 처리한다’는 당론을 확정할 때 어느 누구도 반대의견을 낸 의원이 없었다. 안 원내대표가 19일 강행처리 방침을 밝히며 소집령을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사수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는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180도 바뀌었다. 안 원내대표가 ‘박근혜 투표 참여’ 발언을 한 것이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민주당의 실력 저지로 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당 지도부에선 박 전 대표의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인해 정부 여당의 법안 추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부 친이(친이명박) 의원은 ‘포퓰리즘 정치’라면서 박 전 대표를 향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한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결국 당을 쪼개고 나가겠다는 뜻 아니냐”고 말했고, 다른 초선 의원은 “친박 의원 다수의 생각과 박 전 대표의 생각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친박, 일단은 봉합 기류

박 전 대표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친박계 의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을 맞을 때마다 당 지도부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이지만 당내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비난이 적지 않은 등 후폭풍이 심상치 않을 조짐이기 때문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미디어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19일 발언 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과의 통화에서 미디어법 수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한 이정현 의원에게 화살을 돌리는 기류도 없지 않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안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가 투표장에 나오겠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말을 이 의원이 그대로 전하는 바람에 문제를 더욱 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 의원들은 당내 갈등이 더 이상 증폭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국정 비협조’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협력과 비판’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웠던 친박계 의원들이 당혹해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칫 박 전 대표의 발언에 ‘국정 비협조’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직격탄’의 뿌리는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한결같이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 자신이 몸을 낮추는 것이 성공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들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4월 재·보선 이후 쇄신 논란이 불거졌을 때 화합형 원내대표 추대 움직임에 대해 박 전 대표가 “국정과 당 운영의 실패를 계파 갈등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표가 막판에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제동을 건 것 또한 이명박 정부를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되는 충청권 총리설과 자유선진당에 대한 러브콜이 박 전 대표와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은 것을 이번 파동과 연결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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