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의 골도 터지길 응원해주세요”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남북 동반진출을 보며 북녘땅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이회택 前감독 특별기고

북한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로 도약한 북한 축구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남북한의 월드컵 본선 동반 진출은 우리 겨레 전체의 영광이다.

북한은 5세 때 헤어진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내겐 마음의 고향이면서도 영원히 건너지 못할 강이었다.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어릴 적 깡통에 새끼줄을 감아 공을 만들어 차던 축구는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축구로 꼭 성공해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결국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다. 프로팀 감독에 이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대표팀 감독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만날 기회는 1990년 우연히 찾아왔다. 그해 남북통일축구가 홈앤드어웨이로 열렸고 나는 1987년 킹스컵대회 때 만나 친분을 쌓은 박두익 씨의 주선으로 4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박 씨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8강 신화를 이룬 스타다.

혈육의 정이란 게 어찌 그리도 깊은지…. 10월 11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 전날 재회한 아버지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스포츠, 정치의 벽 깨뜨렸으면”

수백만 이산가족의 눈물이 마치 내 가슴을 통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피를 나눈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수십 년간 보지 못한 아픔이었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났겠는가. 비록 그 뒤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지만 나는 그때 축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다.

솔직히 북한에 대한 내 감정은 좋지는 않다. 아버지 때문만이 아니라 최근 핵 위협을 포함해 때만 되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일들이 축구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축구인이다. 정치와 이념은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경험에 비춰 보면 북한의 행보는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는 정치가 깨지 못한 벽을 많이 무너뜨렸다. 남북통일축구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늘 북한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남과 북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축구는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응원을 기억하는가. 빨간 셔츠와 태극기 스카프로 전국의 거리거리가 온통 빨간 물결이었다.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를 무너뜨리고 4강 신화를 썼다.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는 전 세계에 퍼져 해외에 나가면 외국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 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을 모르는 현지인이 많았는데 월드컵을 개최한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코리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은 북한에도 큰 기회다. 한국이 2002년 보여줬듯 북한도 내년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무너뜨리며 세계 속으로 도약했으면 좋겠다. 그런 모습을 북녘 동포들이 보고 세계를 느끼길 바란다. 남과 북이 함께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물리치며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해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한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그래서 꽉 막힌 정치도 화끈한 골처럼 봇물이 터지길 기대한다. 남북 축구 파이팅!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