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40분 운구행렬… 한걸음 한걸음 ‘숙연한 작별’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 씨, 형 노건평 씨를 포함한 유가족 등 2500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 씨, 형 노건평 씨를 포함한 유가족 등 2500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복궁 앞뜰 영결식~서울광장 노제~서울역까지

풍선… 종이비행기… 모자… 세종로 일대 ‘노란 추모물결’

백원우의원 “사죄하라” 소동… ‘사랑으로’ 부르며 노제 마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치러진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과 광화문, 서울광장 일대는 추모 인파가 몰려 애도 분위기 속에 장례 절차가 진행됐다. 이날 오전 11시 흥례문 앞뜰에서 열린 영결식엔 권양숙 여사 등 유족을 포함해 이명박 대통령 내외 등 25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노 전 대통령 노제와 서울역까지 이어진 거리 운구행사에선 시민 18만여 명(경찰 추산, 시민단체 추산 50만여 명)이 나와 고인을 배웅했다.》

○ 엄숙했던 경복궁 영결식장

경복궁 인근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몰렸다. 일부 시민들은 비표가 있어야 영결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경복궁을 찾았다가 되돌아가기도 했다. 오전 10시 58분경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가로 1.1m, 세로 1.4m)을 실은 차를 선두로 운구 행렬이 경복궁 동문으로 들어서자 장내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권 여사, 아들 건호 씨, 딸 정연 씨 등 유족이 차량 뒤를 따라 걸으며 입장했다.

오전 11시 국민의례와 묵념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공동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라며 조사를 읽자 유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대형 스크린에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과 함께 한용운의 시 ‘님은 갔습니다’가 상영됐다.

유족 헌화에 이어 이 대통령이 헌화하려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갑자기 일어나 “사죄하라. 정치적 살인이다”라고 외치며 뛰어나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청와대 경호원들이 즉각 백 의원을 제지하자 순간 좌중이 술렁거렸고 “그냥 놔둬라” “사죄하라” 등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잠시 백 의원 쪽을 바라보다 분향을 마쳤다. 장내 아나운서는 “참석하신 분들은 자중해주기 바란다”고 몇 번이나 요청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한 전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소란에 대해 사과했고, 이 대통령은 괜찮다는 뜻으로 말했다.

해금 연주자 강은일 씨가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좋아한 ‘아침이슬’과 ‘아리랑’을 연주하자 다소 격앙된 장내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영결식은 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 광화문 서울광장 일대 노란 물결

낮 12시 25분.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경복궁을 나와 동십자각, 세종로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도로 곳곳에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색깔의 햇빛가리개를 쓰거나 노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노란 풍선을 들고 애도를 표시했다. 시민들이 가로수, 경찰통제선 등에 노란 풍선을 매달아 세종로 거리는 온통 노란색으로 가득 찼다.

운구 행렬이 세종로를 통과하자 많은 시민이 인도로 나와 영구차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성북동에 사는 김미향 씨(61)는 “노 전 대통령을 바보 노무현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훌륭한 대통령을 두고 지키지 못한 국민이 바보”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인도의 경찰통제선을 넘어 운구 행렬에 합류했다. 사무실 건물 창밖으로 운구 행렬을 지켜보는 직장인도 많았다.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독일인 에카하트 클라우저 씨(67)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애도를 표현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린 탓에 이날 낮 경복궁, 광화문 일대에는 휴대전화가 불통되기도 했다.

오후 1시 20분경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들고 있던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리며 “노무현”을 외쳤다. 노제는 30분간 진행됐다.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함께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노제는 시작됐다.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 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시민이 눈물을 흘렸다. 전북 김제시에서 온 최병대 씨(55)는 “삶과 죽음은 모두가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란 노 전 대통령 유언 문구가 쓰인 만장을 든 채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연방 훔쳐댔다. 오후 2시경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좋아한 ‘사랑으로’를 합창하면서 노제는 마무리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은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기도 했다.

○ 추모 인파 운구행렬 따라 이동

오후 2시 10분경 운구 행렬은 인파를 헤치고 서울역으로 향했고 만장 2000여 개가 뒤따랐다.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빠져나가는 영구차에 손을 대며 “가지 마세요”라고 외쳤고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했다.

서울역으로 가는 행렬 속에서도 시민들은 계속해서 “노무현 살려내라”를 외쳤다. 서울역이 보이기 시작하자 일부 시민이 “이명박은 집에 가라”고 외치자 다른 시민들이 “배후세력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며 말리기도 했다.

추모 인파로 인해 운구 행렬 이동속도가 늦어져 오후 3시 10분경에야 서울역 앞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시민들이 운구 행렬에 따라붙어 서울역 앞에서 꼼짝하지 못한 채 머무르다 오후 3시 40분 서울역을 출발했다. 서울역을 벗어나 용산구청까지 가는 동안에도 운구 행렬을 따라가던 시민 중 일부는 운구 차량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운구 행렬은 수많은 인파로 지하철 남영역, 용산구청, 삼각지까지 걷는 속도로 이동하다 오후 5시 20분경 삼각지 고가도로에 도착한 뒤에야 제 속도를 내며 경기 수원시 연화장으로 출발했다.

한편 이날 온라인 공간에서도 누리꾼들의 다양한 추모가 이어졌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영결식의 시간대별 일정을 공개하고 영결식을 생중계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부른 ‘상록수’ 노래를 사이트 초기화면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았다. 또한 영결식에 참석했던 누리꾼들이 참가 후기 등 글과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