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납북자 - 국군포로 관련 남북대화록 입수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20분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북한과의 국군포로·납북자 관련 협상에서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인 1953년 6월과 7월 사이에 발생한 포로들을 우선 송환하는 문제를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는 정전 이후 발생한 납북자를 데려오기 위해 비전향 장기수와의 맞교환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상응조치’로 남포항 현대화, 평양∼개성 고속도로 보수 등 대규모 경제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26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납북자 및 국군포로 관련 대북 협상 대화록을 통해 밝혀졌다.

정부는 2006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귀측(북한)이 전쟁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납북자)과 정전협정상 특수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에서 보다 대범한 조치를 취한다면 우리 또한 이에 상응하는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에서 빠진 사람들?=대화록에 따르면 정부는 ‘정전협정상 특수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1953년 6월과 7월의 ‘금성전투’와 ‘기마전투’ 당시 격렬한 전투를 하면서 포로가 됐던 사람들로 휴전협정으로 인한 (석방)조치들 밖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1953년 포로 교환 이후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강경한 태도를 고려해 포로 교환의 대상에서 제외됐던 정전협정 직전 2개월간 발생한 국군포로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여기서 납북자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도 포함해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전에도 납북자 문제 해결 방안으로 비전향 장기수와의 맞교환설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해 왔다. 정부는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송한 뒤 “이제 남한에는 비전향 장기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문 걸어 잠근 남북 사이에 오간 대화=대화록에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측의 흥미로운 태도가 엿보이는 내용도 담겨 있다.

북측 대표는 2002년 10월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실무접촉에서 “전쟁 시기 행불자(국군포로) 문제는 이전에 해결된 문제이지만 우리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박근혜 여사의 청을 받아들여 해결하도록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는 남측에 대해 북측은 종종 ‘인민군 포로’ 문제를 꺼내며 맞섰다.

2005년 8월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은 “1953년 포로협정이 조인된 직후 남측은 2만7000여 명을 강제 석방했으며 1954년 1월에도 2만9000명의 우리 포로들을 포항과 군산 등지에서 남조선군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했다.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이 더딘 것에 대한 공방도 오갔다. 2002년 10월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인민보안성을 총동원해도 행불이 된 사람을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일”이라고 해명했다.

남측 대표는 “남측에서야 행불이지만 북측에서는 ‘공민’이 된 사람인데 무슨 행불이냐”고 핀잔을 놓았고, 북측 대표는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잘못하면 나 이제 상부한테서 비판을 세게 받을 수도 있다”고 엄살을 부렸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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