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요지경 속’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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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출 기준 238조 원(일반회계 158조 원) 규모로 편성된 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놓고 여야의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열린우리당은 24일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 활성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제출한 재정 규모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라며 12조 원을 삭감하기로 했다.

새해 예산안의 국회 심의를 앞두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신해룡 수석전문위원이 만든 ‘내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1195쪽)에 따르면 정부 부처가 예산을 확보한 뒤 쓰지 않거나 같은 용도로 중복 사용하는 등 불합리한 예산 신청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예산 운영의 묘 살려라=내년 복지 부문 예산 증가율은 10.4%로 전체 예산 증가율(6.4%)보다 4%포인트 높다. 열린우리당은 복지에 치우쳤다는 지적에 대해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기존 복지프로그램의 자연 증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의 자활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인데 자활 성공률이 하락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자활 성공률은 2002년 6.9%, 2004년 5.4%, 올해 상반기(1∼6월) 3.9%로 낮아지고 있으나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6조5834억 원으로 23.2% 늘려 잡았다.

이 보고서는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2월 설치한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예산으로 6억900만 원을 편성했지만 이미 운영 중인 대통령 소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직이 중복된다고 지적했다.

▽남북교류사업, 남북관계 고려하라=이 보고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숙소 건립을 지원하기 위해 180억 원을 신청했으나 보고서는 북한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를 고려해 시기를 조정하고 남측의 정서를 감안해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서는 ‘남북간 인적교류 지원 사업’이라는 명목과 달리 한국 국민만 북한을 체험하고 있는 만큼 남북 주민이 왕래할 수 있는 사업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부는 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사업 예산으로 올해보다 1억3500만 원 많은 7억8500만 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사업을 위한 협의회조차 꾸리지 못해 실적은 거의 없다.

▽법안 통과 안 된 과거사 보상에 1505억 원=행정자치부는 일제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위로금을 지원하는 사업에 2010년까지 4578억 원이 들 것이라며 신규 예산으로 1505억7500만 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사업의 근거가 되는 ‘일제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보고서는 “국회통과 후 예산 반영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60년 이상 지난 사건에 대한 근거자료 부족과 희생자 입증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심사기준과 원칙, 심사위원회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이 먼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필요한 곳에는 예산 더 늘려라”=국회 예결위가 예산을 줄이라고만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장비 유지비로 1조3594억 원을 편성했지만 이 보고서는 현재 전술항공기 예비엔진의 97%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고 전차 등 궤도장비도 정비 적체가 24%에 이르는 등 군의 장비 노후와 정비 적체 현상이 심각하다며 증액 검토의견을 냈다.

해양경찰청은 경비함정에 들어가는 유류비로 531억 원을 편성했지만 경유세 인상과 함정 증가로 매년 예산이 부족해 다른 항목에서 전용하고 있다며 증액 검토의견을 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영수증 낼 필요없는 ‘특수활동비’2002년 5483억→내년案 8137억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48% 늘어났다고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24일 주장했다.

기획예산처가 이 의원에게 제출한 ‘연도별 특수활동비 예산현황’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특수활동비는 8137억 원으로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의 5483억 원에 비해 2654억 원(48%) 증가했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첨부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으로 감사원 결산검사와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특수활동비는 특정한 업무 수행 및 수사 활동에 직접 쓰이는 경비로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청이 주로 사용한다.

정부기관별 특수활동비 증가율을 보면 과학기술부가 271%로 가장 높고 이어 통일부 144%, 국회 103% 순이다.

외교통상부와 국가청렴위원회, 국가안전보장위원회 등 3곳은 2002년에는 특수활동비 예산이 없었으나 현 정부 들어 새로 편성했다.

현 정부 출범 후 5년(내년 예산 포함) 동안 책정된 특수활동비 총액은 3조6644억 원으로 집계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4년(1999∼2002년, 1998년 자료는 없음)간 특수활동비는 1조9465억 원이었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는 1143억 원, 국무총리실은 63억 원, 국정홍보처는 11억 원, 국회는 349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책정했다.

이 의원은 “특수활동비는 대표적인 불투명 예산인 만큼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 규모로 편성해야 하므로 내년 특수활동비는 동결하거나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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