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당분간 연정얘기 안해” 한발짝 빼고 외곽 때리기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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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케이크 맛있네”중미와 유엔 등을 순방하기 위해 8일 출국한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로 향하는 기내에서 생일(9일)을 맞아 동행 기자들이 선물한 축하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맛보고 있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를 보며 웃고 있다. 석동률 기자
“생일케이크 맛있네”
중미와 유엔 등을 순방하기 위해 8일 출국한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로 향하는 기내에서 생일(9일)을 맞아 동행 기자들이 선물한 축하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맛보고 있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를 보며 웃고 있다. 석동률 기자
“당분간 연정 얘기 안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순방 및 미국 뉴욕 유엔총회 참석차 8일 출국한 노무현 대통령은 멕시코로 가는 특별기 안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연정론’은 당분간 불을 끄겠지만 대신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새 불을 지피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정론 숨고르기=노 대통령은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연정 얘기만 안 하면 (나를) 돕는다고 했다”며 “당분간 나도 연정 얘기 안 할 것이다. 같은 얘기를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언론에서 (박 대표와의 회담 이후) 정국이 급랭할 것이라고 하던데 그럴 일 없다”면서 “(순방 마치고) 돌아와도 정기국회 시기에 정치는 잘 돌아갈 것이다. 이번 국회는 수확이 있고 원만한 국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연정론의 최대 진원이었던 노 대통령이 ‘숨고르기’를 선언함에 따라 연정론은 일단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과 유인태(柳寅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지도부도 연정론을 더는 꺼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이 ‘당분간’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한나라당의 연정 거부 의사가 확실하기 때문에 연정론이 아예 소멸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은 ‘대연정’ ‘초당적 내각’ 제안을 당분간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서도 “지역구도 극복 방안으로 연정 문제 제기는 이후 적절한 계기와 시기에 다시 할 수 있도록 열어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이 언제까지를 의미하는지를 놓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정기국회 시기에 정치는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미뤄 일단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이미 ‘올해 말까지 연정론을 제기할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는 12월 중순 이후부터 내년 초에 새로운 카드를 꺼낼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선거구제 개편 불 지피기=노 대통령은 정기국회에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정국이 순항할 수만은 없는 또 다른 불씨를 던졌다. ‘선거제도 논쟁’ 발언이 그것. 당장 열린우리당이 이 불씨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한나라당이) 연정이 싫다고 하면 마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은 그것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선거구제 개편 입법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법안이 발의되면 (한나라당이) 논의 안 할 수 있겠느냐”며 자신감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10월까지 정개특위 차원의 선거구제 개편안을 마련한 뒤 12월 정기국회 폐회 전에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할 방침이다.

여기엔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지지하는 민주노동당도 가세하고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의석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 열린우리당은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전면 도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양측이 적정한 선에서 합의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만일 노 대통령이 순방을 마친 후 민노,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주요 의제로 올린다면 정국은 선거제도 개편 쪽으로 쏠릴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선거구제 개편 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만 고립되고, 자연히 한나라당의 반발 강도도 거세질 것이다.

이에 열린우리당이 ‘권력을 줄 테니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하자’는 제안을 거부한 결과라고 맞설 경우 노 대통령의 ‘순항’ 전망과는 달리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반대와 여론에 밀려 연정론을 거둔 것이 꼭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권은 이런 관측이 ‘터무니없는 상상력의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선거구제 개편을 둘러싼 정기국회 파행’이 노 대통령의 6단계 정계 개편 시나리오의 제1단계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연정논의 당분간 중단’ 野 반응… “연정론 쐐기” 일단 환영

연정에 한목소리로 반대해 온 야당은 “당분간 연정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일단 반겼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당분간’이라는 조건을 붙인 만큼 앞으로 또 다른 형태로 야당을 압박할지 모른다는 경계심도 풀지 않았다.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9일 구두 논평을 통해 “아주 반가운 이야기”라며 “대통령은 국민에게 투항할 때는 무조건적으로 하고, 외유기간에 국민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연정 논의를 일단 접은 것은 7일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에서 박 대표가 쐐기를 박은 덕분이라며 득의양양한 분위기다. 야당의 잇따른 비판과 냉랭해진 여론 속에 노 대통령이 결국 ‘꼬리’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한 당직자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에게 박 대표가 그럴 명분을 만들어 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당분간이 아니라 ‘임기 동안’ 연정을 잊고 국민에게 연정(戀情)을 품으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대해서는 반응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은 “앞으로 열린우리당이 총대를 메고 선거구제 개편에 나서겠지만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선거구제 개편은 정치의 연못에 던지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다. 그 물이 튀고 넘쳐서 민생은 물난리가 나고 말 것”이라면서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거듭 주장했다.

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지지하는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은 “이제 연정 문제는 완전히 과거사로 묻어 두고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선거구제 개편이 합의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면서도 “지금 선거구제 개편 얘기를 하는 것은 개헌 문제와 같은 집의 큰 골격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둥을 어떻게 할지를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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