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 중복투자… 막대한 국가 예산이 줄줄 샌다

  • 입력 2005년 3월 3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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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A지방자치단체는 1억3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지역 내 공립초등학교에 컴퓨터실을 마련해 줬다.

컴퓨터를 사는 데 든 돈은 3000만 원. 나머지 1억 원 정도는 감시카메라 설치비로 들어갔다. 이 카메라는 군사용으로 반경 1km를 감시할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였다. 배보다 배꼽이 컸던 셈.

이런 식으로 새는 국가 예산이 너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원희(李元熙) 예산감시위원장은 30일 기획예산처에서 ‘시민의 눈으로 보는 정부예산의 낭비 실태와 극복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예산 편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문제=이 위원장은 △전시행정 △경쟁적 편성관행 △중복투자 △수익성 과대 포장 △도덕적 해이를 예산 낭비의 원인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전시행정 사례는 도로에 명칭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부여하는 사업.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에는 107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도로 이름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주민들조차 건물 번호를 몰라 ‘생활불편 해소와 물류비 절감’이라는 당초 사업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건설교통부가 전북 김제, 경북 울진 등에 지방공항을 건설하는 사업은 중복투자로 예산이 낭비된 사례. 고속철도 개통으로 지방공항의 이용객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경쟁적으로 예산을 따내려는 관행도 예산 낭비 요인으로 지적됐다.

최근 B지방자치단체는 올해 박물관 건립을 위해 예산 102억 원을 확보했다.

박물관 사업이 시작된 지난해 예산은 설계비 명목의 6700만 원. 지자체는 올해 토지 매입과 공사에 돈이 많이 든다며 예산을 미리 확보했다. 하지만 이제야 설계를 공모하는 단계여서 실제 집행된 예산은 없다. 예산이 잘못 배정된 사례다.

▽예산 사후관리 필요=예산을 배정하기 전에 사업효과를 충분히 검토하는 사전 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정보화 관련 예산이나 과학기술 관련 연구개발 사업은 관련 전문가들이 먼저 기술발전 흐름을 예측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예산을 누가 왜 사용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공무원들은 효과가 거의 없는 사업이라도 ‘계속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다음 해로 이월하는 일을 막기 힘들다는 것.

이 위원장은 “예산을 편성한 뒤 어떻게 쓰이는지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투입한 예산에 비해 성과가 나쁘면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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