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교육시설 하나원 들여다보니...

  • 입력 2004년 8월 5일 1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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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제일처음 남한사회를 배우는 이 곳, 하나원은 수용자들의 안정을 위해 지금껏 외부 노출을 자제해왔다.
탈북자들이 제일처음 남한사회를 배우는 이 곳, 하나원은 수용자들의 안정을 위해 지금껏 외부 노출을 자제해왔다.
경기도 안성시 △△면 ○○리.

남한을 찾은 탈북자들의 새 주민등록증에는 이 주소가 본적으로 기재된다.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이른바 ‘하나원’이 위치한 곳이다.

최근 468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탈북자가 남한에 도착하면서 하나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를 처음 배우는 정부 공식교육기관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

한 해 탈북자 1000명 시대에, 2만평 남짓한 하나원의 울타리는 넉넉한 걸까.

분단 50년 동안 굳어진 ‘차이’를 8주간의 교육으로 ‘동화’시킬 수 있을까.

하나원 관계자들은 “탈북자들은 남한에 대한 ‘기대’를 안고 하나원에 들어왔다가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나간다”고 전한다. 또 수용시설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가급 보안시설’ 하나원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하나원은 한나라당 의원단 방문에 대한 동행 취재 형식으로 어렵게 빗장을 열었다.

이곳에선 남한 직원 41명이 탈북 주민 294명을‘교화’하기 위해 땀을 쏟고 있었다.

하나원은 초만원

“조금씩만 더 넣으면 전원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강락 하나원 소장은 최근 남한에 도착한 468명의 탈북자들의 하나원 입소준비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금씩’이라는 표현에 대해 “3인이나 4인이 쓰던 한 방에 한 명씩만 더 넣으면 600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소장은 “탈북자 인원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감당하려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대답했다.

교육 실무를 맡은 한 직원은 “470여명에 달하는 탈북자를 수용하기에는 교육인원도 부족하고 현장체험을 나갈 버스도 부족하다”며 “탈북자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2000년 이후 매년 탈북자 수는 전년의 2배 정도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원은 지난해 11월 숙소를 증축한 것이 전부.

이번 탈북 사태로 인해 최대 정원 600명 규모의 하나원은‘정원 초과’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이 소장은 “한꺼번에 입소하는 것이 아니어서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면 수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하지만 다른 곳을 임시 교육시설로 빌려 쓰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하나원에서는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8주간의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한나라당 의원단이 방문한 날의 모습.

“이자가 뭡니까.”

“돈을 빌려주는 건 알겠는데 이자를 받는다는 건 뭡니까.”

안택수, 이방호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방문단과 하나원 교육생 7명이 마주한 면담에서 한 교육생이 던진 질문이다.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설명하기가 참 난감했다”고 말했다.

8주 동안의 하나원 교육은 50년간 굳어진 ‘체제’의 차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짧은 시간.

그래서 교육생들이 겪는 자본주의에 대한 난감함은 더욱 크다.

의원 면담이 시작되자 잠시 머뭇거리던 이들 교육생은, 배석했던 통일부 관계자들이 자리를 비껴주자 신세한탄에 가까운 얘기들을 쏟아냈다.

“올 생각이 아니었는데 3일 만에 남한행을 결심했습니다. 아직도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고등중학교 밖에 못 나왔는데 대학 나온 사람이 대부분인 남한에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백화점 구매실습을 나가보니 남한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는 시선이 이상한 동물 쳐다보는 듯 했습니다. 그냥 한 동포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통일부 대북선전단 직원으로 채용해달라는 인사청탁도 있었다.

면담을 마친 한 의원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가가 해주는 게 너무 적어요.”

이 곳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심신안정과 사회적응, 기초 직업훈련 등이며 각 교육은 교육생의 나이에 따라 초등반, 청소년반, 성인반, 노인반으로 나뉜다.

각 반별로는 ▶초등반-외래어, 국어 ▶성인반- 운전면허 필기시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 ▶노인반- 종이접기, 도예실습 등의 과목이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적어서 직접 구매해보는 현장 실습 시간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교육이 진행될수록 교육생들은 남한에 대한 ‘기대치’를 줄여가는 대신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배워나간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현장 구매 실습 시간에는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

하나원 관계자는 “사회주의에 익숙한 이들이어서 그런지 ‘국가가 해주는 것이 너무 적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강락 소장은 “이같은 문제는 안정적인 직업 훈련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우선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는 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려 전체 교육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들 탈북자들은 8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퇴소할 때가 되면 대부분 ‘대도시’ 거주를 희망한다.

이방호 의원은 교육생 면담을 마친 뒤 “평생에 한 번 평양에서 살아보는게 꿈이었던 이들이 남한의 대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나원측은 대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탈북자들을 추첨으로 걸러낸다.

빈번한 폭력 다툼, 하나원 적응도 숙제

이들 교육생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에 앞서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것이 하나원 내의 단체생활. 적은 인원으로 교육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하나원 직원들로서도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가장 빈번한 것이 폭력 사고. 복도 게시판에 붙은 상벌점 규정이 이같은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장 높은 상점(償點)은 ‘폭행 등의 사고를 예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10점. 동료간에 우애를 하거나 청소를 성실히 한 사람에게는 5점의 상점이 주어지며 상점 1점당에는 1천원씩의 포상금이 주어진다.

벌점(罰點) 대상에는 폭행, 흉기소지 및 사용, 성폭행, 성희롱 등에 15~30점까지 주어지며 벌점이 누적되면 교육 과정에서의 혜택을 제한한다.

이 소장은 “여성 전용 수용시설이 지어지기 전에는 성범죄가 간혹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생들 간의 폭력 충돌은 아직도 빈번한 듯 하다.

이 날 국회의원 시찰이 이뤄지는 도중에도 멱살잡이를 하며 다투는 남자 2명을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흔히 있는 일이니 신경 쓸 거 없다”며 “별별 사람이 다 있는 데 저런 (싸움) 정도는 별일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습이었다.

28일 한국에 도착한 탈북자 2진이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 버스에 타고 있던 한 어린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왼쪽). 버스에 타고 있는 한 남성 탈북자는 커튼을 조금 열고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인천=김미옥기자

가장 많이 묻는 건 “얼마나 굶었냐”

하지만 이런 어른들의 모습과 달리 하나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했다.

하나원 한 켠 화장실에서 물기 묻은 손을 털면서 깡총깡총 뛰어나오던 명국(가명.13)이도 그랬다.

그러나 명국이는 낯선 얼굴의 기자와 마주치자 곧바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허리를 꾸벅 숙여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내내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는 명국이가 남한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며칠 굶었냐’는 것이라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명국이는 친구들에게 그냥 ‘하루’라고 대답한단다.

명국이는 “하루 종일 굶었을 때도 며칠씩 되지만 그냥 그렇게 대답한다”며 “그런 질문을 받는 게 기분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랑 지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명국이는 엄마와 함께 북한을 빠져나왔다. ‘노름에 빠진 아빠는 혼자 두고 왔다’고 했다.

북한 친구들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니 명국이는 대답대신 ‘맨날 노름만 하는데 뭐...’라며 아빠를 향해 원망을 보냈다. 고개숙인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하지만 잡았던 손을 놓아주니 다시 후다닥 뛰어가는 명국이의 뒷모습은 영낙없는 열세살 소년, 그대로였다.

명국이는 6월 초에 하나원에 왔으니 이제 진짜 남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됐다.

명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아이가 ‘북한서 온 아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문득 궁금해졌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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