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强小國지도자의 조건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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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을 수행해 방한했던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닮은 점이 참 많다”고 촌평했다.

솔직한 심성(心性)과 일에 대한 정열은 물론 ‘돌출발언’으로 참모들을 당혹케 만드는 골치 아픈 면까지 꼭 닮았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심지어 두 사람은 취임 전까지 유럽을 여행한 일이 없었던 점(부시)과 미국을 가 본 일이 없었던 점(노)까지도 닮았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미국은 대국인 데다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질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한국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처럼 강소국 지도자는 ‘세계적 견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적을 되새겨 보면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두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학자들의 리더십 연구평가 결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프린스턴대학에서 우드로 윌슨 총장(미국 28대 대통령)에게 배웠던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과 6·25전쟁 과정에서 국제 정세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뛰어난 외교역량을 발휘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미국의 조야(朝野)를 꿰뚫고 노회하게 사사건건 맞서는 그를 ‘다루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 정부는 한때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일본 육사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은 ‘20세기 최강의 제조업국’인 일본의 국민동원체제에 대한 노하우와 일본 인맥을 활용해 산업화를 일궈냈다. 요새는 친일 시비의 중심에 서 있지만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일본의 노(老)정객들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무서운 사람’이다.

이에 반해 ‘사회정의 구현’, ‘보통사람의 시대’, ‘문민개혁’ 등을 외치며 등장했던 다른 여러 명의 대통령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앞의 두 사람과 반대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집권의 경위는 ‘총’ ‘지역감정’ ‘바람’ 등으로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인 자원(資源)을 국내 정치게임에서의 승리를 위해 주로 사용한 ‘내수(內需)형’ 지도자란 점이다.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앞두고 여권 내에서는 노 대통령의 복권 후 주제어가 ‘개혁’이냐 ‘민생’이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개혁이 됐든 최종적 목표가 민생에 맞춰져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개혁이 과거의 울분해소를 위한 카타르시스 이거나 세계사의 흐름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허황된 구호에 그치거나 결과적으로 민초(民草)들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었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이 말해준다.

앞날에 대한 불투명함 때문에 한국주식회사의 상황이 더욱 어렵다는 걱정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직무정지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노 대통령이 복권 이후에는 ‘국내 정치게임의 승자’가 되겠다는 유혹과 절연하기를 고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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