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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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곡선이 내려가고 있다는 보도를 집권세력은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권력 주변과 정치판 스캔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여론이란 들쭉날쭉 하는 것이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권이 들어선지 6개월밖에 안 됐으니 머지않아 지지율도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지. 어느 경우라도 지난 6개월에 대한 성찰이 없는 외면과 기대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요즈음 부쩍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물음이 자주 들린다. 오죽하면 대선공신 민주당 중진들이 대통령 리더십을 비판하는 지경이 됐는가. 그래서 더욱 ‘6개월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우물쭈물하다가는 바로잡을 시기마저 놓칠 수 있으니 유념하라는 뜻이다. 아직 4년6개월이나 남았다고 하지 말라. ‘집권 환호성’ 때문에 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1년이 지나면 몸이 굳어지고 만다. 그때 가선 이리저리 돌려보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것이 권력의 관성이다.

▼카드 빚과 ‘2만달러’▼

지지곡선 하락이란, 새로운 지지자는 늘지 않으면서 예전의 지지자는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더 많은 사람이 반대편에 서 있다는 말도 된다. 왜 그렇게 됐는가. 먼저 집권세력의 폐쇄성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정치판세 면에서 보면 변방세력의 중앙 진출이다. 따라서 집권 후 먼저 해야 할 일은 비(非)지지 세력을 추스르고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론 정반대로 갔다. ‘코드’란 것을 앞세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더 멀리 쫓아버리고 말았다. 한 번 상처를 입고 떠난 사람이 되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지금이 혁명적 순혈주의나 독선적 폐쇄주의에 빠질 땐가. 다른 세력과도 함께 가겠다는 어떤 지혜도, 아무런 전략도 없었다. 너무 빨리 사람들을 적으로 돌렸고 그 결과가 낮은 지지율로 나타난 것 아닌가.

또 다른 이유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계속 긴장시키고 있는 이념적 충격이다. 특히 한총련 사태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현 정권이 좌파 성향으로 쏠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불안해한다. 이러다간 친북세력이 더욱 확산될 것이란 위기감이 이들의 마음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념적 논란은 두고두고 부닥쳐야 할 핵심과제로 굳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책의 완급에서도 미숙함 때문에 생활난에 빠진 민생에 힘을 주는 감동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카드 빚 자살사건이 잇따르면서 사회 분위기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되뇌고 있는 것은 ‘2만달러 시대’다. 카드 빚에 쪼들려 하루하루가 불안한, 300만명에 이르는 카드신용 불량자들에겐 2만달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300만명은 경제활동 인구 10%에 이르는 숫자다. 이런 판에 장밋빛 ‘로드 맵’만 보라 할 것인가.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후보 때 국방력 강화와 경제회생이란 두 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취임 후 1년 동안 총력을 쏟은 것은 경제였다.

▼직진하는 ‘혁명’은 없다 ▼

이제 집권세력은 우리 사회의 몸집이 얼마나 큰가를, 또 쉽게 뒤집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대선 승리가 국정운영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절감했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실상을 정확히 진단했다면 이젠 남이 아니라 자신이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변화의 소득을 체험한 바 있다. 대선후보 때의 대미 발언과 5월 방미 때 보인 변화를 비교해 보라. 미국측의 불신을 완전히 불식시켰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각을 세웠던 그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 완화된 것은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내정에서도 변화를 시도할 때다.

어떤 혁명도, 개혁도 직선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때론 현실에 맞춰 굽어서도 간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그래도 현실 여건을 외면하겠다면 어떻게 현실정치를 꾸려 나갈 수 있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지지율 하강곡선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이다. 여기서 주문은 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DJ정권 때 오기(傲氣)정치란 말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오기정치로 고통을 받은 것은 국민이었다. 되풀이할 것인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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