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특검수사, 대통령이 결론 내나

  • 입력 2003년 5월 28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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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관련자 소환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 관계와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손상하는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수사의 한계를 대통령이 그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검 수사에 대한 제약은 국회의 법률 개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노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는 지난달 청남대에서 남북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북한 인사와 관련 계좌의 익명성 보장 등에 합의했으나 아직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국회에 여야 합의대로 특검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할 수는 있어도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검 수사를 희망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듯한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에 비밀송금한 5억달러가 정상회담 대가냐, 순수한 경협이냐, 아니면 두 가지 성격이 섞인 것이냐는 특검이 밝히려는 내용의 핵심이다.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손상하는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핵심 결론을 정해 준 것과 다름없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특검법 거부권 불행사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특검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비쳐질 뿐만 아니라 최종 수사 결론에 대한 불신을 살 수도 있다.

특검은 대통령에게 예속된 수사기관이 아니다. 국회가 검찰 수사에 맡기지 않고 특검법을 통과시킨 것은 대통령과 정치권의 영향 밖에서 독립적인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두환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희망과 걱정이 섞여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지만 특검팀은 대통령의 발언에 일절 신경 쓰지 말고 독립적인 수사를 통해 대북 송금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특검법상 수사가 종결된 뒤 보고만 받도록 돼 있는 대통령이 수사 중간에 불쑥불쑥 ‘희망과 걱정을 섞어 말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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