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단, 해남∼새만금 8박9일의 모든 것

  • 입력 2000년 5월 4일 14시 11분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어렸을 적 즐겨 부르던 동요의 가사. 노랫말처럼 '앞으로 앞으로' 가다보면 친구들만 만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지구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조심스럽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행성, 그 소중함을 되새기는 지구의 날. 광화문 차없는 거리에서 '앞으로! 앞으로!'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현장을 향해 출발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녹색연합에서 매년 추진하고 있는 녹색순례 참가자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녹색순례2000'은 해남 땅끝마을에서부터 간척사업이 진행중인 새만금까지 천리길 행군을 마쳤다. 98년 첫해 강화도에서 새만금까지 순례를 한 데 이어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위한 국토 종단'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셈.

8박9일의 짧지 않은 일정동안 80여명이 순례에 참가했다. 그 중에는 주말을 끼고 2∼3일 휴가를 낸 직장인도 있었고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해 며칠이나마 행군대열에 참가한 대학생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한양대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외국인 자원활동가까지.

오로지 두 발만 의지해 천리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게다가 마른 길만이 아니라 진흙갯벌까지 건너다 보면 발이 퉁퉁 붓는 것은 기본이고 인대가 늘어난 사람도 있다. 물론 녹색연합 조태경 간사처럼 땅의 기운을 직접 느끼고자 '맨발순례'를 감행하는 열혈남아도 있지만.

잠자리 역시 편할 리 없다. 마을회관 정도면 호텔급이고 대개는 야영텐트 속에서 밤을 보낸다. 아직은 쌀쌀한 밤기운을 옆사람의 체온으로 달래고 해가 뜨면 또다시 계속되는 행군. 때론 초코파이로 끼니를 때우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한 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바위에 붙어있는 조개껍질, 굴껍질이 이곳이 예전에 바다였음을 보여주는군요. 오른쪽으로는 담수호를 만들기 위한 수로가 흐르고 있습니다. 물은 냄새가 날 정도로 지저분하네요. 현재 이 담수호의 물은 3급수로 판정이 나 있답니다. 간척이 진행된 후 농사를 지을 거라고 하는데 과연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면 얼마나 깨끗할 지 의문이 듭니다."

4월 25일 영암호를 따라 해남에서 영암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녹색연합 정명희 간사가 전하는 말이다.

그렇게 참가자들은 개발과 경제성이라는 이름 아래 바다가 메워지고 갯벌이 사라진 곳을 밟으며 '파괴된 자연'을 가슴에 담았다.

비단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그곳에 터를 두고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영암 산포리, 함평 돌머리, 고창 용기리, 부안 신복리, 변산 돈지 주민들. 해남 습지보전모임, 김제 신공항 대책위,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전북사람들. 갯벌이 메워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터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때론 거리에 나가 시위을 벌였다.

4월 28일 새만금에서는 4월 24일 군산에서 출발해 해창까지 순례를 한 '새만금간척을 반대하는 전북사람들'과 만나 새만금 간척 반대 집회를 갖기도 했다. 일행중에는 5살난 신새벽이와 3살난 신푸른이 등 어린이도 섞여 있었다.

5월 1일 녹색순례 마지막날. 전라북도 도청소재지인 전주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천리길 녹색순례 보고대회 및 새만금 간척사업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통해 8박 9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녹색연합과 전주신공항 건설반대 투쟁위원회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에서 녹색연합은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북도민 1만인 선언'을 보고하고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과 전북도민에 대한 기만을 이유로 유종근 전북도지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결의문을 통해 "조상대대로 이어받은 새만금 갯벌을 보전하여 자손만대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총력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강한 투쟁의지를 보였다.

이제 98년 강화도에서 새만금까지, 그리고 2000년 해남에서 새만금까지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위한 국토종단'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순례에 참가한 이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는 지켜야 할 새만금이 숙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환경을 지키는 일이….

김경희/동아닷컴 기자 kik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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