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중에도 고객이 부르면…” 조선족 보험여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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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보험료 年10억… 실적 ‘상위 3% 클럽’ 한화생명 박선녀씨

한화생명 영등포지역단 양남지점 보험설계사 박선녀씨가 올해 6월 받은 연도상 동상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도상은 매년 우수한 영업 실적을 낸 설계사들에게 한화생명이 주는 상이다. 한화생명 제공
한화생명 영등포지역단 양남지점 보험설계사 박선녀씨가 올해 6월 받은 연도상 동상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도상은 매년 우수한 영업 실적을 낸 설계사들에게 한화생명이 주는 상이다. 한화생명 제공
처음에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라는 걸 숨기고 싶었다. 말투에 신경 쓰며 두어 시간 열심히 보험 상품을 소개했더니 돌아온 고객의 첫마디가 “그런데 중국에서 언제 오셨어요?”였다. 머리가 멍해졌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태어난 자신이 어떻게 보험설계사가 됐는지 살아온 얘기를 고객에게 풀어놓았다.

1996년 남편과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혈혈단신 한국에 온 뒤 약 10년간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고, 2005년부터는 중국어 방문교사로 일하며 힘겹게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자 고객들도 마음을 열어줬다. 조선족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뒀던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최고의 보험설계사로 다시 태어났다.

한화생명 보험설계사 박선녀 씨(51·여)는 고객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간다. “식당에서 일하는 고객들은 밤 12시가 돼야 퇴근하거든요. 그때 찾아가 상담하고 나면 오전 2시가 넘어요.”

2010년 6월, 설계사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째 새벽 출퇴근을 마다않던 박 씨는 과로로 쓰려져 갈비뼈 4개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병원에 두 달을 머물러야 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허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서울에서 경기 안산까지 택시를 타고 고객을 만나러 갔다. “사고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거잖아요. 제가 퇴원 후에 만나자고 해서 보험 가입이 미뤄진 기간에 고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죄책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진심은 통했다. 보험 들어달라는 말 한 번 없이 2년간 묵묵히 기존 고객들의 보험금 청구, 대출 등 유지 업무를 처리하자 보험 상품에 대해 먼저 문의해 오는 고객들이 생겼다. 설계사가 된 첫해인 2010년, 그는 실적 좋은 새내기 설계사들에게 주는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부터는 한화생명의 2만3000여 명 설계사 중 실적 상위 3% 이내를 일컫는 ‘에이스 클럽’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들었다. 박 씨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고객들이 내는 보험료만 연간 약 10억 원에 이른다.

그만큼 수입도 늘었다. 대출을 끼긴 했지만 올해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2억4500만 원짜리 빌라도 샀다. 한국 국적을 얻었고, 중국에 떨어져 살던 남편과 아이들도 2011년부터 한국에 와서 같이 살고 있다.

박 씨는 지난달 중순 4박 5일간 한화생명의 중국 현지법인인 ‘중한인수’의 5개 지역단을 돌면서 500여 명의 현지 설계사들에게 중국어로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전수했다. 박 씨는 “중국에서는 고객들이 보험료를 1년에 한 번만 내기 때문에 설계사들의 고객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편”이라며 “그래서 주기적으로 안부를 챙기고, 고객이 찾으면 언제든 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고객과 상담할 때 말투를 숨기지 않는다. “돈을 벌려고 일하는 건지, 고객을 도우려는 건지 고객들은 아주 잘 알아요. 그래서 보험을 팔 때는 국적이나 말투보다 진심이 중요한 거죠.”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한화생명#박선녀#조선족#보험설계사#보험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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