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아우는 애틋한 이별가 … 기도하는 형은 눈물의 희망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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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투병시 쓴 김종철 시인 … 쾌유시 쓴 형 김종해 시인
‘시인동네’ 봄호에 실려 10일께 발간

지난해 7월 하순, 시인은 아내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해마다 있는 의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검진 결과를 본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시인은 곧 ‘췌장에서 간으로 전이된’ 4기 암을 통고받았다. 여명은 6개월에서 1년 정도라고 했다.

김종철 시인(66·전 문학수첩 대표)은 그날 밤 병실에서 아내와 말없이 한강을 바라봤다. 언제 다시 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교차하는 생의 다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내가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인은 대꾸 없이 애써 먼 불빛만 바라봤다.

‘주치의 암 선고 들었던 날 밤/날 보아요 과부상이 아니잖아요/병실 유리창에 얼비친/한강의 두 눈썹 사이에 걸린/남편을 보며/애써 웃어보이던 아내.’(‘언제 울어야 하나’)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을 보는 일, ‘그날’을 후회와 절망, 분노 없이 맞는 일, 암에 걸렸다고 가까운 지인에게 알리는 일, 그 모든 것이 고통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시인은 시를 썼다.

‘이제 어디에서나 이름이 빠진/내가 차례를 기다린다/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이/먼저 걸리는 생의 고랑대/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다가.’(‘유작(遺作)으로 남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 따라/죽음의 순례를 시작한 나는/살아 있는 모든 고통은/옷 껴입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암 병동에서’)

일곱 살 터울의 친형 김종해 시인(73·문학세계사 대표)은 난데없이 죽음의 벼랑 끝에 선 아우를 바라보면서 쾌유를 비는 시를 적었다. ‘벌겋게 달궈진 칠월의 폭염도/병실 창 안에서는 하얗게 얼어 있다/일순, 내 앞에서 지진과 함께 세상이 엎어진다/아우여, 이것은 우리가 한여름 밤에/짧게 꾼 황당한 꿈/해는 중천에 떠 있고 갈 길은 멀다.’(‘아직 헤어질 시간이 아니야’)

동생은 일본 도쿄에서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지난해 8월 짐을 꾸려서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병세가 크게 호전됐다. 형은 올 1월 건강을 되찾은 동생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안도와 훈기를 가슴에 담는다. ‘6개월 시한부 말기 암환자 아우의 장례식이 있을/그 1월 한낮에/형제는 만나서 함께 밥을 먹는다/아우는 거두절미, 은혜와 기적을 말한다 (중략) 지금 형제는 꿈속에서 만나/꿈을 꾸며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따뜻한 점심밥’)

형은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우를 만났을 때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서 “무신론자이지만 하느님께 기도했고 그 마음으로 쾌유를 비는 시를 썼다”고 말했다. 병상에서 일어난 동생은 올해 2월 39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추대됐다. 꼭 10년 전 형이 34대 회장을 맡았던 자리였다. 형제 시인이 죽음과 우애의 절박감이 담긴 시들은 계간 ‘시인동네’ 봄호에 실려 10일경 발간된다. 동생은 “아직 형의 시를 보지 못했다. 뭐라고 쓰셨더냐”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김종철#김종해#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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