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 건축예술학원장 “사방 빌딩만 보이는 서울, 미감을 잃어버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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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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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최초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 상’ 받은 왕수 건축예술학원장 방한

“서울은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였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서 있든 빌딩만 보입니다. 빌딩이 풍경을 가리는 건 현대화가 아니라 문화의 쇠퇴입니다.”

올해 5월 중국인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왕수(王澍·49·사진)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장의 말은 직설적이었다. 20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12회 김옥길 기념강좌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 참석차 방한한 그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처음 방문한 서울에 대해 “기본적인 미감(美感)을 잃어버린 상태”라며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중국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서울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쪽”이라며 가파른 경제 성장세에 맞춰 쭉쭉 뻗어 올라가는 중국의 대형 건축 붐을 비판했다. “서구는 이미 고층 상업 빌딩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경쟁적으로 고층 빌딩을 짓고 있어요. 이는 미래를 망치는 일이고 남이 버린 걸 줍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왕 원장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태어나 난징(南京)공학원 건축과를 졸업했고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료 건축가인 부인 루원위(陸文宇) 씨와 ‘예위(業餘·아마추어) 건축공작실’을 운영하며 전통 가옥의 폐자재를 활용하고 고전 산수화 기법을 설계에 접목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는 회사 이름에 대해 “하나만 파고드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기 싫은 데다 아직 배울 것이 많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중국 변방 출신 건축가가 프리츠커 상을 받자 건축계에서는 “아시아의 지역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세계 건축계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왕 원장은 “서구가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구 문화에 주눅 들어 있던 동아시아가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양 건축 문화의 핵심은 자연을 존중하는 윤리적인 건축입니다. 사람보다 자연을 우위에 두어야 합니다. 요즘 말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가치와도 부합하는 전통이지요. 서울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파괴하는 건축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 사람의 심리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건축가 왕수의 대표작인 중국 저장 성 닝보 역사박물관. 전통 가옥의 폐자재와 대나무 등을 활용해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화여대 제공
건축가 왕수의 대표작인 중국 저장 성 닝보 역사박물관. 전통 가옥의 폐자재와 대나무 등을 활용해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화여대 제공
왕 원장은 주류 서구 건축계와 단절된 자신의 이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항저우를 제2의 고향으로 택한 이유가 “중국 전통 예술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10년간 중국 전통 가옥을 짓는 장인들을 따라다니며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이는 “대학에서 배운 서양 건축 기법을 잊기 위해서”였다. ‘중국인 최초로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는 소개말에 대해 “역대 일본 수상자들은 스스로를 유럽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아시아인 최초로 받은 것”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그가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을 때 “개인 실력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나라를 보고 준 것”이라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왕 원장은 “나는 중국 건축계에서도 비주류다. 중국 건축가협회도 내가 프리츠커 상을 받았을 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짧게 언급했다.

이날 강연에는 왕 원장 외에 2010년 프리츠커 상 수상자인 일본의 니시자와 류에,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한중일 3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연단에 섰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왕수#프리츠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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