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절망 쫓는 주문은 ‘가갸거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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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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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피해지역 가설주택가
한국말 배우며 희망 찾기

“한글 배우며 힘든 걸 잊어요.” 동일본 대지진 1년여 만인 4월 27일 일본 이와테 현 오후나토 시의 이재민들이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후나토=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한글 배우며 힘든 걸 잊어요.” 동일본 대지진 1년여 만인 4월 27일 일본 이와테 현 오후나토 시의 이재민들이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후나토=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한국어교사 윤환식씨
한국어교사 윤환식씨
“힘들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 있나요. 일어서야지요. 한국말 공부는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어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일본 오후나토(大船渡) 시의 가설주택 단지에 모처럼 ‘희망 꽃’이 피었다. 인구 4만 명의 오후나토 시는 1800가구가 재난을 당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피난민으로 전락한 이재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진 1년 만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시작했다. 희망의 씨앗이 된 것은 한국말 배우기다.

이재민들은 지난달 13일부터 격주 금요일 저녁에 만나 2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최근 기자가 교실을 찾았을 때 20명의 학생이 두 번째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이라고 해봤자 가설상가 2층에 마련된 가건물이었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좁고 열악한 가설주택에 살다 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요. 하지만 주민들이 함께 뭔가를 하다 보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았어요. 그 뭔가가 한국어가 된 거죠.”

한국어 공부 모임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우에노 히데아키(上野英明·61) 씨. 그는 “가설주택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에 ‘이웃’이라는 연대감이 희박하다. 대화나 소통이 거의 없다 보니 고독사나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쓰나미로 집과 가게를 모두 잃고 가설주택에 살고 있던 나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게 우선 급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어 교사를 찾는 일이었다. 우에노 씨는 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차일드펀드’에 부탁했다. 차일드펀드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시민단체 ‘NPO법인 일한문화교류회’에 의뢰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윤환식 씨를 찾아 소개했다. 15년 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여성과 결혼한 윤 씨는 현재 목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남을 가르쳐 본 적이 없어 망설였지만 이분들의 열정에 감탄했다”며 “같은 이재민으로서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말을 배우기로 한 것은 한류의 영향이 컸다. 2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다는 50대 여성 요시다 유코(志田裕子)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한국에서는 한 살이라도 많으면 윗사람으로 공경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그런 한국을 보면서 한국문화, 한국말이 배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연예인 송승헌 씨를 좋아해 별명이 ‘송 행자’라는 오쓰카 사치코(大塚幸子) 씨는 “며칠 전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4시간 동안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었다”며 “한국어를 배우는 날은 힘든 것을 잊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차일드펀드의 후나토 요시카즈(船戶義和) 씨는 “한국어교실 개설 소식이 퍼지면서 수업 첫날 10명 남짓이던 신청자가 24명으로 늘었다”며 “최근 다양한 동호회가 만들어졌지만 한국어교실이 가장 활발하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재 등을 지원하고 있는 일한문화교류회는 앞으로 오후나토에서 한국음식 축제나 연예인 방문 행사 등을 열어 한국어교실을 측면 지원할 계획이다.

오후나토=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한국말#오후나토#일본 지진#한국어#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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