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서 7년간 인술… ‘한국판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48세로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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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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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긴 말 “걱정마, 잘될 거야”

1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가톨릭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가 거행됐다. 군의관까지 지냈던 고인은 의사의 길을 버리고 2001년 사제품을 받은 뒤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 병원과 학교를 짓는 등 봉사에 힘썼다. 조종엽 기자
1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가톨릭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가 거행됐다. 군의관까지 지냈던 고인은 의사의 길을 버리고 2001년 사제품을 받은 뒤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 병원과 학교를 짓는 등 봉사에 힘썼다. 조종엽 기자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가 1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가톨릭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조문객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조문객 대부분은 생전에 이 신부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신부는 14일 오전 5시 35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병실에서 가족과 동료 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했다. 이날 오전 1시 반경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매던 이 신부는 상체를 조금 들고 “돈 보스코!”라고 말했다. 돈 보스코는 가난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살레시오회의 설립자. 이어 이 신부는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고 말했다. 사제들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 휴가를 나가던 병사들이 눈이 너무 많이 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는 것. 다들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 신부가 운전병을 설득해 그들을 구하러 갔지만 병사들은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숨진 채 발견됐고, 이들을 구하지 못한 이 신부는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1992년 광주 가톨릭대에 입학한 뒤 2001년 살레시오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수단으로 건너갔다. 그는 굶주림, 식수난, 말라리아와 한센병 등으로 고통받던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병원과 학교를 짓고 의료 봉사와 선교활동을 해 왔다.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14∼16일 5000명 이상이 미사에 참석해 이 신부를 추모했다. 대구에서 온 김지희 씨(38)는 “신부님의 삶을 전해 듣고 ‘나는 무엇으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신부의 소개로 지난해 12월 한국에 와 공부하고 있는 수단 톤즈 출신 존 마옌 씨(24)는 “이 신부는 진정한 ‘수단의 아들’”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신부의 오른손에는 사제품을 받을 때 자신이 평생 마음에 두고 살기로 정한 성경구절이 적힌 카드가 쥐어졌다. 구약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인이 제 아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는 구절이었다. 가족들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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