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25>‘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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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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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

美유학시절 수녀와 인연으로
회사 직원들 3개월씩 연수보내
한국외대에 국제회의장 기증도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국제관에 있는 애경홀. 장영신 회장은 외국어 관련 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해 8개 언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을 만들어 1997년 한국외대에 기증했다. 그는 미국 유학파로, 한국외대와 개인적 인연은 없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국제관에 있는 애경홀. 장영신 회장은 외국어 관련 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해 8개 언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을 만들어 1997년 한국외대에 기증했다. 그는 미국 유학파로, 한국외대와 개인적 인연은 없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나는 오래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임직원이 적어도 외국어 하나 정도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애경그룹은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3개월씩 미국 필라델피아로 연수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미국 대학에 다닐 시절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가톨릭계 여자대학이었던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체스넛 힐 대학 재학 시절, 주말이나 방학이면 학생들은 집에 갔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인 나는 늘 학교에 남아 있었다. 방학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기숙사와 도서관 실험실을 오가면서 생활했다. 실험실에는 위험물질이 많아 지도교수 없이 학생 혼자 이용할 수 없다는 교칙이 있었다. 패트릭 메리라는 수녀 교수가 주말에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나는 실험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테니 데레사(내 세례명)는 언제든지 마음 편히 실험하라”고 배려해 줬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는 미사와 조찬을 마친 후 실험실에 가서 마음껏 공부하고 실험할 수 있었다.

고학생을 배려하는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어 대학 졸업 후에도 수십 년 동안 메리 수녀와 각별히 지냈다. 메리 수녀를 통해 로베르타 리베로라는 수녀와도 친하게 됐다. 리베로 수녀는 와튼스쿨과 예일대에서 공부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딴 분으로 혈기왕성하고 열정적이었다. 리베로 수녀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톨릭 여대인 모교를 남녀공학으로 만들자고 주장했지만 뜻이 이뤄지지 않자 학교를 그만뒀다. 리베로 수녀의 능력과 열정을 아는 몇몇 신부의 격려와 가톨릭재단의 지원으로 그는 교육기관을 세웠다. 나 또한 그의 열정을 이해하기에 책상 등 교육 관련 기자재를 마련해 주는 등 후원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애경 직원도 새로운 문화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리베로 수녀와 함께 애경 직원만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해서 미국연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원은 오전에는 어학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박물관을 찾거나 세미나 등에 참석한다. 주말에는 자유롭게 골프도 치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한다.

필라델피아에는 애경의 협력사인 PQ사의 연구개발(R&D) 부문이 있어 가끔 출장을 간다. 그때마다 이곳에 들러 리베로 수녀와 회포를 풀고 공부하는 애경 직원들을 격려한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가끔 “한국외국어대 나오셨느냐”는 얘기를 듣는다. 애경에 입사 지원을 한 한국외국어대 학생 가운데는 “회장님이 우리 학교 동문 아니시냐”는 질문도 한다. 한국외국어대에 있는 ‘애경홀’ 때문이다.

1994년 안병만 총장(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한국외국어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외국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관련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는데 50여 개 언어를 가르치는 한국외국어대에 동시 통역장이 없어 국제회의도 치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97년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국제관에 8개 언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을 만들어 기증했다. 한국외국어대를 대표하는 행사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모의 유엔총회’가 애경홀에서 열린다. 대규모 국제회의도 애경홀에서 자주 열린다.

이 밖에 한국어과를 두고 있는 홍콩대와 한국외국어대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교환학생 교육비용도 몇 년째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내가 한국외국어대 발전에 기여했다고 대학 측에서 국제관에 흉상을 세워줬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문구처럼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어서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교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의 반경이 넓어지고 결국 행동의 범위가 넓어짐을 의미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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