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컬러의 전자책도 나올 수 있어요”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 제4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 김은경 교수

빛을 받으면 성질 변하는 물질 탐구
국제논문 100여편… 특허 120건 보유
“여성과학자 늘게 기업들이 도와야”

“과학을 한 덕분에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김은경 연세대 교수는 “박사 학위를 갓 받은 여성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 등에서 채용 확대를 포함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주 기자
“과학을 한 덕분에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김은경 연세대 교수는 “박사 학위를 갓 받은 여성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 등에서 채용 확대를 포함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주 기자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그래서 과학자가 되었죠. 오르내림도 있었지만 과학을 한 덕분에 평생 즐겁게 살았어요. 지금도 과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우린 참 행복하다’며 즐거워해요.”

28일 ‘제4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을 받은 김은경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50)는 과학자가 천직인 듯 보였다. 김 교수는 “얼마 전 중학교 성적표를 우연히 봤는데 꿈이 과학자라고 적혀 있었다”며 “부모님과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도 이 길을 권해 자연스럽게 과학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 상은 여성 과학자의 활약상을 알리고 연구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과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함께 만들었다. 대상 상금은 3000만 원. 김 교수는 2001년 동아사이언스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제1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기도 했다. 1982년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화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휴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하다 2004년 연세대로 왔다.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과학에 빠져 사는 게 참 즐거웠다고 강조했다. ‘이것만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잊어버리고 신이 난다고 한다. “원래 어려움이 있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내가 스치고 지나간 곳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고생을 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진전시켜 놓자는 마음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전도성 고분자.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 물질이나 빛을 받으면 성질이 변하는 물질의 성질을 탐구하는 분야다. 그는 “1980년대 이 물질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노벨상을 받았다”며 “아직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최신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에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전도성 고분자는 유기물질이다 보니 가볍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거나 두께를 조절하기 쉽다. 중금속을 쓰지 않아 환경에도 좋다. 김 교수는 “우리 실험실은 고분자 물질이 전기가 흐르는 정도에 따라 색이나 형광이 달라지는 연구를 많이 한다”며 “더 발전하면 다양한 컬러의 전자종이나 전자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미있는 응용 분야로 입는 태양전지를 들었다. 무인도에 가서도 옷만 입고 있으면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를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외에서 120건의 특허를 받았다. 2006년에는 나노바이오융합연구클러스터 단장을 맡아 11개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등 산학연 연구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전도성 고분자 위에서 줄기세포의 성장을 조절하는 등 바이오 분야로도 연구 폭을 넓히고 있다.

여성 과학자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물었더니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줘 다른 사람보다는 힘들지 않았다”면서도 “여성 과학자에게 출산과 육아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 힘들었던 것은 경직된 직장 문화였다고 한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일도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나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참아야 할 때 참 힘들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사회가 여성 과학자를 더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며, 특히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얼마 전에 조사했는데 아모레퍼시픽은 연구소의 여성 인력이 70%가 넘어 모범 기업으로 뽑혔죠. 이런 기업이 늘어야 해요. 기업에서 여성을 임원으로 적극적으로 승진시켜야 여성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이 나옵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여성들이 정말 똑똑한데 의지가 약한 면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눈치 보지 말고 몸도 잘 챙기면서 공부하라고 격려했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여성을 많이 우대하는 정책을 펴다 요즘은 좀 주춤해요. 어느 정도 성장한 여성 과학자를 큰 리더로 키워서 역할 모델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상도 좋아요. 인정을 받은 느낌이고, 용기를 주거든요. 여성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 더 늘었으면 좋겠어요.”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