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탁구 봉사… 라켓 안 놨어요”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한국 여자 탁구의 영원한 맏언니 양영자. 1988 서울 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딴 뒤 은퇴하고 탁구계를 떠나 현재는 중국 내몽골에서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여전히 탁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인천=김경제 기자
한국 여자 탁구의 영원한 맏언니 양영자. 1988 서울 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딴 뒤 은퇴하고 탁구계를 떠나 현재는 중국 내몽골에서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여전히 탁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인천=김경제 기자
양영자(오른쪽)가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중국 선수들을 꺾고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현정화(현 KRA 감독)와 함께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양영자(오른쪽)가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중국 선수들을 꺾고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현정화(현 KRA 감독)와 함께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80년대 탁구여왕 양영자 씨, 몽골 유망주 5명과 방한

22일 오전 인천 서구 원당동 대한항공 탁구단 체육관. 검은색 니트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양영자(44) 씨는 마치 20년 전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짧은 헤어스타일이나 몸매가 예전과 다름없었다.

양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현정화(39) KRA 감독과 짝을 이룬 여자복식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국내에 탁구 신드롬을 일으켰던 ‘탁구 여왕’. 1980년대 국내 여자탁구를 주름잡았고 1986년 부산 아시아경기,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현 감독과 짝을 이뤄 3년 연속 여자복식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양 씨는 25세 때인 1989년 초 은퇴해 제일모직(현 삼성생명) 코치 생활을 잠깐 하다 탁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양 씨가 선교사의 길을 택한 기자 출신 남편 이영철(47) 씨를 따라 1997년 몽골로 떠난 것.

2004년 몽골에서 중국의 몽골 자치주인 내몽골로 옮겨 선교활동을 하는 그가 일주일에 두세 번 탁구 지도를 해주는 몽골 대표팀의 유망주 5명을 데리고 21일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대한항공에서 합동 훈련을 할 수 있게 초청해 줬어요. 몽골 아이들로선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어요.”

양 씨는 몽골에서도 탁구 클럽을 열어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등 여전히 탁구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몽골에서 ‘본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비정부기구(NGO) 활동이다.

반재(16), 윤재(15) 두 딸은 2005년 기숙사가 딸린 대전의 학교에 보냈지만 양 씨 부부는 언제 한국에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

국내 탁구계를 오래 떠나 있었지만 탁구계에서 양 씨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대한항공 김무교(33) 코치는 “어릴 때부터 우상이었다”며 “3년 전 대한항공 선수 2명을 데리고 내몽골을 방문해 언니하고 탁구를 쳐봤는데 정말 실력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오전 훈련이 끝난 뒤 대우증권 탁구단이 훈련하는 한국체대로 자리를 옮겼다. 김택수(39) 대우증권 총감독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양 씨의 단골 훈련 파트너였다.

김 감독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양 씨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요즘 여자탁구 어렵잖아요. 누나 같은 사람이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지요. 그럴 책임이 있는 거 아니에요?” 양 씨는 “조금 기다려 봐. 혹시 알아? 돌아올지”라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서울 올림픽에서 유남규(40) 대한탁구협회 이사가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당시 언론은 “남자탁구가 마침내 여자탁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할 만큼 한국 여자탁구는 강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한국 탁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결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 씨는 “공격형 선수들을 대표팀 주축으로 키워야 희망이 있다”고 짧게 답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영상취재 : 동아일보 스포츠레져부 김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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