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인천 서구 원당동 대한항공 탁구단 체육관. 검은색 니트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양영자(44) 씨는 마치 20년 전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짧은 헤어스타일이나 몸매가 예전과 다름없었다.
양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현정화(39) KRA 감독과 짝을 이룬 여자복식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국내에 탁구 신드롬을 일으켰던 ‘탁구 여왕’. 1980년대 국내 여자탁구를 주름잡았고 1986년 부산 아시아경기,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현 감독과 짝을 이뤄 3년 연속 여자복식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양 씨는 25세 때인 1989년 초 은퇴해 제일모직(현 삼성생명) 코치 생활을 잠깐 하다 탁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양 씨가 선교사의 길을 택한 기자 출신 남편 이영철(47) 씨를 따라 1997년 몽골로 떠난 것.
2004년 몽골에서 중국의 몽골 자치주인 내몽골로 옮겨 선교활동을 하는 그가 일주일에 두세 번 탁구 지도를 해주는 몽골 대표팀의 유망주 5명을 데리고 21일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대한항공에서 합동 훈련을 할 수 있게 초청해 줬어요. 몽골 아이들로선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어요.”
양 씨는 몽골에서도 탁구 클럽을 열어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등 여전히 탁구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몽골에서 ‘본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비정부기구(NGO) 활동이다.
반재(16), 윤재(15) 두 딸은 2005년 기숙사가 딸린 대전의 학교에 보냈지만 양 씨 부부는 언제 한국에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
양 씨는 오전 훈련이 끝난 뒤 대우증권 탁구단이 훈련하는 한국체대로 자리를 옮겼다. 김택수(39) 대우증권 총감독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양 씨의 단골 훈련 파트너였다.
김 감독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양 씨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요즘 여자탁구 어렵잖아요. 누나 같은 사람이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지요. 그럴 책임이 있는 거 아니에요?” 양 씨는 “조금 기다려 봐. 혹시 알아? 돌아올지”라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서울 올림픽에서 유남규(40) 대한탁구협회 이사가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당시 언론은 “남자탁구가 마침내 여자탁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할 만큼 한국 여자탁구는 강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한국 탁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결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 씨는 “공격형 선수들을 대표팀 주축으로 키워야 희망이 있다”고 짧게 답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영상취재 : 동아일보 스포츠레져부 김성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