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은총재 “SVB 사태 韓은 백 배 빠를 것”… 유동성 방파제 높일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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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면 미국보다 예금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모바일 뱅킹 등 온라인 금융 이용자 비중이 선진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어서 ‘디지털 뱅크런’의 파급 속도와 충격이 훨씬 클 것이란 경고다.

지난달 미국의 16위 은행이던 SVB는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지급 불능에 대한 우려가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되자 고객인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이 앞다퉈 온라인으로 예금을 빼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은행권 금융거래 가운데 스마트폰·인터넷·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한 비대면 거래 비중이 86%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주말을 포함해 하루 24시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 디지털 뱅크런이 현실화하면 금융회사와 한은, 금융당국이 대응할 수 있는 말미는 SVB에 비해 훨씬 짧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한국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자금 구조가 취약하다”고 콕 집어 지적했을 정도로 금융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설업체들의 파산까지 늘고 있어 총 130조 원의 금융권 PF 대출은 언제라도 금융 시스템을 흔드는 화약고가 될 수 있다. 실제 이번 주 일부 저축은행의 예금 인출이 중단될 것이란 헛소문이 돌아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디지털 뱅크런을 예방하려면 금융 소비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할 가능성을 낮추는 게 급선무다. SVB 사태 때 미국 재무부가 한 것처럼 일이 벌어진 뒤 예금 전액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뒷북 대책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은행과 소비자의 모럴 해저드 가능성만 커진다. 금융회사들이 내야 할 보험료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23년째 5000만 원에 묶여 있는 예금보호한도를 현실화하는 작업부터 서둘러야 한다.

금융회사들의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도 은행위기 이후 급변한 최근의 금융 환경에 맞춰 손볼 필요가 있다. 은행과 비은행권 금융회사들이 ‘광속 뱅크런’의 충격을 버텨낼 수 있도록 더 강하고 높은 방파제를 쌓게 유도해야 한다.
#한은총재#svb 사태#예금인출 속도#백 배 빠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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