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軍의 성범죄는 민간인보다 더 엄하게 처벌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6일 03시 00분


전방에서 근무하던 여군 대위가 직속상관의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오모 대위의 유서와 일기에 따르면 그는 10개월 동안 노모 소령의 성추행과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노 소령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해 주겠다”며 끈질기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상관의 파렴치한 욕망이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오 대위는 사단본부 부관참모부에서 근무해 사단장을 비롯한 상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해당 부대는 장기간에 걸친 여군 장교의 피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 대위는 부대원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고충상담관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고충은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2009년 329건이던 군내 성범죄가 2012년에는 453건으로 늘었다. 현재 여군은 8448명으로 전체 군 장교와 부사관의 4.7%에 이른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장교의 7%, 부사관의 5%까지 늘릴 계획이다. 육해공 어느 부대에서나 남자 상관과 여자 부하가 함께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범죄에 대한 군 전체의 각성을 위해서도 가해자를 엄벌하고 지휘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여성의 군 입대가 보편화한 미군이나 이스라엘 군대에서 성범죄 예방법을 배워 올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이화영 소장은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에서는 하급자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공론화하기가 어렵다. 전출을 요청해도 이유가 알려져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피해자를 은밀하게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 뒤 가해자 조사를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는 미군처럼 철저하게 ‘무(無)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어제 발표한 ‘2013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세계 136개국 가운데 111위였다. 지금도 병영의 한쪽 구석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여군이 있을지 모른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군의 성범죄는 일반사회보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강군(强軍)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군의 성범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여군#성추행#성관계 요구#군내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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