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이버 갈등 살인… ‘다른 생각’ 존중이 소통의 기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현피’는 ‘현실’과 ‘플레이어 킬(Player Kill)’의 앞 글자를 합성한 신조어다. 온라인에서 게임이나 토론을 하다 갈등을 빚은 사람들이 직접 만나 싸우는 것을 뜻한다. 극단적 ‘현피’가 비극을 불러왔다.

30대 남성이 온라인 논쟁을 벌이던 동갑내기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두 사람은 2010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진보 성향의 글을 올리며 가까워졌으나 지난해 여성이 보수 성향의 글을 올리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차는 사생활을 비난하는 욕설과 비방으로 번졌고 급기야 끔찍한 범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성의 얼굴도 모르던 남성은 여성의 주소를 알아내 닷새 동안 사전답사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번 일은 사이버 공간의 다툼이 현실로까지 이어진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이념 지역 피부색 등을 빌미로 인신공격과 신상털기, 지역감정과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저질 발언이 범람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얼마 전 모 걸그룹의 동영상에 나온 ‘쩔뚝이’란 표현을 놓고 사이버상에서 치열한 의견다툼과 감정싸움이 벌어진 것도 한 예다. 사실 확인도 없이 누리꾼들은 내 편 네 편을 갈라 상대에게 무차별적 비난과 막말을 퍼부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2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사용인구는 78.4%에 이른다. 인터넷은 생활필수품이 됐지만 사이버 세계에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가상현실의 익명성과 강한 전파력을 악용해 타인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는 사이버 폭력이나 근거 없는 괴담을 퍼뜨리는 사람이 많다. 그 바탕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왜곡된 영웅심리가 깔려 있다.

현실 세계이건 가상 세계이건 나와 다른 사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의 의견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온라인 세상을 소통과 신뢰의 마당으로 가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익명성 뒤에서 증오를 키운다면 ‘현피’의 비극은 늘어날 것이다. 온라인을 이기(利器)로 쓸지, 흉기로 쓸지는 이용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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