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되느냐 안 되느냐보다 얼마가 드는지부터 정확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선 공약들은 실현 가능성과 재원 마련 가능성 등에 대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논의하면서 진정성을 갖고 정성껏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수위의 인수 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약에 대해 지키지 마라, 폐기하라든지,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에 어긋난다”고 부연했다.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선 공약의 수정 보완론이나 속도 조절론, 폐기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긴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이 담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약은 원래 이행을 전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이 공약 이행 의지를 재확인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약 중에는 무리하게 이행해서 얻는 득보다 손실이 훨씬 큰 경우도 있다. 세종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 당선인이 약속을 지키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수정안을 끝까지 반대해 관철시켰지만, 지금 세종시는 행정의 비효율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박 당선인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나 국가적으로는 손실이 크다.

국정 최고 책임자는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정 형편도 고려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정 소요액이 적게 계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4대 중증질환 무료 진료만 해도 박 당선인 측은 6조 원가량이 든다고 했으나 보건복지 관련 4개 학회 및 연구기관이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21조8000억 원이 든다는 추계가 나왔다. 박 당선인의 모든 공약을 이행하는 데 새누리당이 추계한 131조 원(5년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선거가 끝난 뒤 공약 이행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사실 잘못이다. 공약을 만들 때 소요액까지 면밀하게 계산해야 하고, 선거 전에 충분한 사전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작년 4·11총선 때 기획재정부가 공약 소요 금액에 대한 사전 검증을 시도했으나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제동을 거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재정부가 인수위의 요청에 따라 이달 말까지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정부에만 맡겨 놓는 것은 한계가 있다. 차제에 부문별 전문가 그룹과 정부, 인수위가 참여해 공약 이행에 필요한 정확한 예산 규모를 객관적이고도, 투명하게 산출해 내고, 이를 국회에 설명하는 절차를 거치면 논란이 줄어들 것이다. 그 후에 공약의 수정이나 폐기 또는 우선순위의 조정, 재원 조달의 구체적 방법을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대선 공약#박근혜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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