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아는 것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며칠 전 한 입시 전문가의 언론 인터뷰 멘트다. 18대 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 시사평론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 막판에는 새로운 지지층 확대보다 기존 지지층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어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다. 시험과 선거는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있다. D데이 전날까지 뭔가 보충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수험생은 문제집 한 권이라도 더 풀고 싶은, 후보자는 몇백 표라도 추가하기 위해 열세지역에서 한 번이라도 더 유세를 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여론조사 수치와 추세, 여러 변수를 감안할 때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박빙 혼전 승부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 빅2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1925∼)가 남긴 ‘명언’을 새삼 되새겨봐야 할 듯싶다. ‘끌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뉴욕 양키스 현역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0개를 열 손가락에 모두 낀 베라는 뉴욕 메츠 감독 시절인 1973년 시즌 중반 한 기자로부터 “메츠가 올 시즌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시즌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거취 관련 질문을 받았다.

이에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메츠는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비록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패해 11번째 우승 반지는 끼지 못했지만 베라의 당시 멘트는 야구계 최고의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선거판에서 자주 인용되는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그런데 베라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선거운동 기간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유효한 경구(警句)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두 달 이상 남았는데 최근 청와대 참모들이 잇달아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 ‘이탈’하는 등 레임덕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선까지 가능한 미국(4년 중임제)과 달리 대한민국(5년 단임제)은 정권 말기 몇 달은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같은 북풍(北風)도 이때 집중적으로 분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5년마다 되풀이되는 통치력 누수 기간 몇 달’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시험은 변별력이 중요하다. 선거도 후보자의 자질과 비전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안 되면 말고’ 공약이 난무하는 작금의 상황은 개탄스럽다.

물론 정책과 재원의 선택과 집중으로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公約)이 실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대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은 대부분 공약(空約)에 그쳤다. 대선 이후 여야가 서로 반목의 정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거국(擧國)내각을 넘어선 구국(救國)내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혹자는 말한다. 국민이 표로 심판할 것이라고. 하지만 유권자가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로마 공화정시대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고 설파했다. 어차피 선거는 ‘상대평가’다. 최선(最善)이 없다면 국가와 국민의 앞날을 위한 차선(次善), 그것도 아니면 차악(次惡)이 선택의 기준이다.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여론조사#선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