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원 65명인 어린이집 대기자는 2415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한 주부는 동네 국공립 어린이집을 찾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정원이 65명인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는 대기자가 2415명이나 됐다. 인근 다른 어린이집에도 98명 정원에 1092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암동 아파트단지는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지역인데도 어린이집은 국공립 2곳 등 7곳밖에 없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면 출생신고보다 어린이집 대기 신청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젊은 엄마들의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국공립은 보육료가 비교적 싸고 시설과 교사도 민간시설보다 상대적으로 낫다.

박양숙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서울시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은 5만5000여 명이지만 대기자는 10만 명이나 된다. 민간 어린이집 가운데 평판이 좋은 곳은 형편이 비슷하다. ‘3세 이하 대기자가 많은 어린이집’은 어린이 한 명당 500만 원, 총 수억 원의 권리금이 붙어 매매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전국 3만8000여 곳 어린이집에 18%의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정원이 156만 명인데 등록 어린이는 127만 명이라는 것이다. 시설이 부실하거나 공인되지 않아 부모들이 기피하는 곳까지 다 합친 수치다. 정부가 보육의 질을 감안하지 않는 통계에 의존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온다.

올해 정부의 국공립 어린이집 신축예산은 119억 원이다. 리모델링 비용 등을 제외하면 20억 원만 남아 늘어나는 정원은 700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0∼2세 전 계층 무상보육을 해주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을 늘리지 않으면 ‘어린이집 찾아 삼만리’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0∼2세 아이를 둔 부모들이 ‘대표적인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보육예산은 3조999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1% 늘었다. 전국 어린이집 1곳당 평균 8000만 원의 국고가 투입되는 셈이다. 이만한 예산이 들어가는 정책이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는데도 대상 기업의 41%가 어기고 있다. 대기업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앞으로 젊은 노동력 확보와 저출산 극복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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