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와 안철수 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의 수도 워싱턴 외곽을 순환하는 ‘수도권 벨트웨이(Capital Beltway)’로 불리는 I-495가 있다. 미국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치러질 때마다 I-495 ‘바깥’(아우터 벨트웨이)에 있는 정치인, 시민운동가, 기업인들이 I-495 ‘안’(이너 벨트웨이)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부패한 정치인들을 타도하고 ‘워싱턴’ 연방정부를 개혁하기 위해 쳐들어온다. 워싱턴을 접수하기 위해 진군해오는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에는 여와 야도, 진보와 보수도 따로 없다. 그들의 공통점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수도권 내에 있는 연방정부, 로비스트, 언론, 정부공사 수주기업 등 이너 벨트웨이의 기득권 세력을 ‘개혁’ 또는 ‘청소’하겠노라고 공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터 벨트웨이 지역인 캔자스 주 출신이지만 연방 상원의원을 근 30년 하면서 전형적인 이너 벨트웨이 정치인이 돼버린 밥 돌은, 아칸소 주지사 출신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밥 돌은 직업이 상원의원이고 기득권자에다 낡은 과거를 대표하는 이너 벨트웨이 정치인이라고 공세를 펴자 맥없이 대선에서 패배하였다.

여야 따로 없고 변화-개혁 외쳐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이후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이 이너 벨트웨이 정치인을 공격해 워싱턴을 접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성공한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 중에는 주지사 출신이 많다. 왜냐하면 주지사는 지방에 거주하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민생정치를 하기 때문에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기 쉽기 때문이다. 1976년 이후 취임한 6명의 대통령 중 카터 레이건 클린턴 부시 등 4명이 주지사 출신이다. 현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초선 연방 상원의원일 때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너 벨트웨이 정치인으로 낙인찍히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의 드림을 다시 살리겠다면서 기득권 세력으로 가득 찬 워싱턴을 변화시키고 개혁하겠다는 ‘대담한 희망’을 외치는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함으로써 최초의 흑인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구호는 ‘변화와 개혁’이다. 그러나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변화와 개혁이 반드시 진보적이지는 않다. 레이건과 부시는 부자 감세, 복지 축소 같은 보수적인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워싱턴으로 진군했다.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가 성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피파 노리스 교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 요구와 정부의 실적 사이의 갭이 ‘적자 민주주의’를 낳고 적자 민주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중앙정부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수록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주가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안철수 돌풍이 한국 정치의 핵으로 부상하였다. 이제 안철수를 빼고 2012년 대선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안철수는 근 4년간 부동의 1위 대선후보로 꼽혀온 박근혜를 위협하고 있다. 아직 대선 출마 의사도 밝히지 않은 안철수가 대선후보 인기도에서 박근혜와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필자는 안철수 현상을 한국판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의 출현으로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권자들의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수준과 현 정부의 실적 사이에 커다란 갭이 발생하여 적자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있고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있다. 자연히 국민은 이너 벨트웨이가 아닌 아우터 벨트웨이로부터 혜성같이 나타나 구민(救民)해 줄 지도자를 찾고 있었는데 한국 정보기술(IT) 혁명의 선도자로서의 능력과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제공하는 따뜻한 기업인의 이미지를 가진 안철수에게서 지도자를 발견한 것이다. 둘째, 이미지의 정치가 안철수의 부상에 한몫을 하고 있다. 안철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을 개발해 유명해졌다. 분명 정치 바이러스가 컴퓨터 바이러스와 다르지만 국민은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한 백신을 개발한 능력 있는 안철수가 정치 바이러스도 퇴출해 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안철수는 기득권 정치인이 아니라 의사로부터 출발하여 IT업계의 총아로 성공한 기업가이자 시민운동가라는 점에서 아우터 벨트웨이 정치인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박종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부, 의회, 정당에 대한 신뢰는 ‘결함이 있는’ 후진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낮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중앙정치에 대한 불신이 정당 배경이 없는 안철수를 오히려 부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기대치 이상 성과내야 성공

그러나 안철수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안철수의 지속적 성공은 안철수가 그에 대한 기대보다 높은 실적을 냄으로써 흑자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안철수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국민에게 물어봐야 하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