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명품 소비 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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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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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이끈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현대인의 상품 소비를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규정했다. 상품의 기능보다는 상품이 상징하는 권위를 구매함으로써 사회적 차별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소비자학)는 한국인의 사치품 소비 동인(動因)을 ‘과시형(남과 같을 수 없다)’ ‘질시형(남만 할쏘냐)’ ‘동조형(남들이 하니까)’ 등으로 분류했다. 사회적 차별화는 과시형과 통한다.

▷전문직 여성 K 씨의 ‘명품족(族) 예찬’을 들어보자. “한국과 같은 ‘간판사회’에선 가방에 달린 명품 로고가 ‘명함’을 대신하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진정한 명품족은 가죽, 바느질, 염색, 장식 하나하나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해요. 그렇게 고른 명품에 비싼 값을 치르는 건 예술작품에 투자하는 것과 같죠. 제 경험상 명품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뛰어난 여자들은 대개 똑똑하고 일도 잘하더군요.”

▷컨설팅기업 ‘매킨지&컴퍼니’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은 2006년 이후 매년 12%씩 성장해 지난해에는 45억 달러(약 4조80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가계소득에서 명품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달해 명품족 많기로 소문난 일본(4%)보다 소비성향이 더 높다. 수(手)작업으로 연 700∼800개를 생산하는 에르메스 버킨 핸드백은 국내 판매가가 1200만 원 정도다. 한국에서 이 백을 주문해놓고 몇 년씩 기다리는 사람이 1000명을 넘는다. 일본에선 일주일에 50만 원 정도를 받고 버킨백을 빌려주는 렌털 서비스가 인기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명품 대여 사이트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향유하는 소비를 다른 사람들이 나무랄 수는 없다. 직접적인 사용가치뿐 아니라 기호와 이미지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야 돈이 돌고 경제가 굴러간다. 돈 많은 부유층이 취향 높은 상류층으로 성숙해지면 ‘무역 한국’의 위상이 상품 수출국에서 브랜드 수출국으로 ‘양질전화(量質轉化)’하는 날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경제능력이 없으면서 명품에 탐닉하는 ‘된장녀’는 딱한 노릇이다. 아울러 수입 명품만 찾지 말고 국산 명품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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