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경학]당신이 계셔서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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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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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신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줍니다. 신이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시인 정호승 선생님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읽으며 가슴에 새긴 구절입니다.

때때로 절망하지만 나는 매일 희망을 만납니다. 희망이 무엇이냐고요? 저의 희망은 푸르메재단이 개설한 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서 치료받고 있는 꼬마들입니다. 재단의 아침은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발달장애를 가진 꼬마들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목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꼬마들도 있지만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녀석들이 고슴도치처럼 머리에 침을 맞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 예쁘기도 합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다섯 살 경민이는 아빠 일 때문에 멕시코에 살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이곳에서 치료받았습니다. 경민이 어머니는 두 돌 때 경민이의 장애를 발견하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의 장애를 알고부터 집 나서기가 두렵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그 더운 여름날 방안에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마음속으로 경민이를 수없이 죽이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매일 힘겹게 살아가면서 어머니는 스스로 괴물로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민이의 누나들도 엄마 눈치만 보게 되면서 집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런 불행이 여러분께 닥쳤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다행히 다운증후군 부모 모임을 알게 되면서 경민이 어머니는 가슴속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경민이를 조금씩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경민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니 더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경민이를 주신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2년 동안 치료받은 경민이는 더는 장애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인내와 가족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지요.

장애어린이 키우는 부모님들

발달장애를 가진 태영이는 또랑또랑 말을 잘하는 여섯 살 남자아이입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재활센터에 들어서는 태영이 어머니에게 언제 집을 출발했는지 물었습니다. “눈이 너무 와서 오전 6시에 서둘러 나왔어요.” 아! 그랬습니다. 태영이네 집은 강원 홍천이었습니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태영이 아버지는 7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목발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뇌성마비와 청각장애인입니다. 몸이 불편한 두 분이 자식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그 추운 새벽길을 달려오신 거지요. 처음에는 걷지 못하던 태영이가 어느 날 벽을 짚고 서더니 이제는 조금씩 걸음을 옮겨놓습니다. 태영이 부모님은 태영이에게 효과가 있는 한방 치료가 비싸 포기했지만 푸르메재단에서 저소득 어린이를 위한 한방 치료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휴가를 낸 태영이 아버지는 공휴일에 대신 근무한다고 합니다.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박봉으로 생활하면서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태영이 부모님이 제게는 인생의 큰 스승입니다.

청각장애 딸 쌍둥이를 가진 민이 어머니는 지방 공사장에서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쌍둥이의 도시락을 싸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전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인 민이마저 청각장애와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끝없는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할 텐데 민이 어머니는 아이를 들쳐 업고 씩씩하게 재단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목조차 가누지 못했던 민이에게 2년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민이 어머니가 울며 사무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민이가 드디어 걸어요. 지금 동네 공원에서 저와 함께 걷고 있어요. 흐∼으윽!” 평소 황소처럼 무덤덤했던 민이 어머니는 그날 전화통을 붙잡고 목 놓아 울었고 모든 직원도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이 주위에 많습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장애어린이의 부모님을 만나면 ‘참 위대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동안 저에게 위대한 분들은 조국 광복과 민주화, 경제 기적을 위해 온몸을 바친 분들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부모님들이 더 위대하게 보입니다.

인내와 사랑으로 기적 만들어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의 어머니는 장애아 부모가 갖는 고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진이가 자폐 판정을 받으면서 제 눈에는 형진이 아빠와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형진이만 보였습니다. 24시간 형진이 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내 불행이 너무 커서 남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보다 더한 어려움에 있는 어머니들의 눈물과 불행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난 모든 장애어린이의 부모님들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나는 이분들을 통해 희망을 배웁니다. 당신이 계셔서 참 고맙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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