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제역 대란’ 대통령이 사과하고 수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332만여 마리에 이르는 가축을 매몰 처분한 구제역 대란(大亂)은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구제역 발생 이후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뒷북만 쳐 국민의 분노가 끓고 있다. 76개 시군의 4054곳에 산재한 구제역 가축 매몰 장소가 상수원 오염, 침출수 유출, 붕괴 우려로 상당 부분 옮겨 묻어야 할 지경이다. 팔당상수원보호구역 안에도 매몰지가 조성돼 침출수가 새 나오기 시작하면 수도권 2500만 주민의 식수원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높다.

구제역 방역과 매몰의 상당 부분은 지방자치단체 소관이지만 정부는 사령탑 역할을 할 책임이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반세기 만에 최악의 구제역’이라는 평가를 내린 판에 이 대통령은 올해 1월 3일 신년 특별연설을 하면서 구제역이란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 구제역은 5개 시도로 확산됐고 64만여 마리의 가축이 매몰된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국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제역 발생 이후의 상황 전개를 보면 ‘충분한 역량’의 근처에도 못 미쳤음을 자인해야 한다.

매몰지 주변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죽은 가축의 발이 땅 위로 튀어나올 정도로 마구잡이 매몰이 이뤄졌다. 이로 인한 토양 오염 및 침출수 유출 등은 제2의 재앙을 예고한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주말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찾았다가 엉망진창인 현장을 보고 할 말을 잃었던 모양이다. 장관에게 보여줄 정도로 잘됐다는 곳이 이 지경이면 다른 지역은 오죽하겠는가. 장관이 기자들과 함께 매몰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사진 찍히러 다니는 이벤트처럼 보인다.

한강 상류의 상수원보호구역은 축산 자체가 제한돼 있는데도 축사가 방치됐고 구제역 가축까지 마구잡이로 묻었다. 봄에 언 땅이 녹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환경부는 상수원보호구역 관리 감독을 지자체에 미루고 손놓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을 “상황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이미 사태 수습에 완벽하게 실패해 물러나기로 예정된 장관이 효율적인 사태 수습을 할 수 있겠는가. 장관이 없다고 수습이 안 될 것도 없다. 책임을 물어야 할 때 확실히 물어야 공직자의 기강이 확립된다.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직접 구제역 수습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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