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주한 중국대사 지낸 장팅옌 씨 “한-중, 처음 수교 맺을 때보다 멀어진 것 같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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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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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 중한우호협회 사무실에서 인
터뷰를 마친 후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베이징의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
려가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 중한우호협회 사무실에서 인 터뷰를 마친 후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베이징의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 려가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북한 김일성 주석의 표정이 그렇게 굳은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초대 한국대사로 부임해 6년간 근무한 장팅옌(張庭延·75·중한우호협회 부회장) 전 대사는 중국이 북한에 한중 수교 사실을 통보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대응을 놓고 한중 간 이견이 있던 지난해 12월 하순 베이징(北京) 협회 사무실에서 장 전 대사를 만났다.

장 대사는 “한중은 수교 초기가 신혼 밀월이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관계가 후퇴한 것 같아 아쉽다. 부부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신뢰로 살듯이 한중도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며 수교 초기 비화를 소개했다.

정식수교(1992년 8월 24일)를 한 달여 남겨 놓은 1992년 7월 15일 오전 장 전 대사가 수행한 첸치천(錢其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 6, 7명은 전용기로 평양공항에 내린 후 곧장 헬기로 갈아타고 40분쯤 지나 김 주석이 기다리고 있던 연풍호반의 별장에 도착했다. 첸 부장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한중 수교 시기가 성숙했다. 북한의 이해와 지지를 구한다”는 취지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자 김 주석은 굳은 표정으로 “이미 결정됐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우리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합니다”라고 대답한 뒤 입을 닫았다. 중국 대표단은 그날로 돌아와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장 주석과 리펑(李鵬) 총리 등에게 결과를 보고했다고 장 전 대사는 전했다.

장 전 대사는 한중 양국이 비밀 수교협상을 진행할 당시 협상단이 상대방 국가가 정해준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고생하던 일화 등을 들며 “수교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양국관계가 정치 경제 인적교류 면에서 활발해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한중 관계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隔海相望),’ 그리고 ‘형제와 같은 이웃(兄弟隣邦)’이라고 정의하며 한국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장 전 대사는 1958년 베이징대 동어과(東語科)에서 조선어를 전공했으며 졸업한 해 외교부에 들어와 1998년 퇴임할 때까지 40년의 외교관 생활 동안 20년을 한반도(북한 14년, 한국 6년)에서 근무하고, 20년은 본부에서 한반도 및 한반도가 포함된 동아시아를 담당했다. 퇴임 후에도 협회 부회장 등으로 줄곧 한반도 관련 활동을 해 한반도와의 인연이 52년째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와 잇단 도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문제에선 한국인들의 마음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북한 비핵화 등을 위해 중국이 좀 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원조한다고 중국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북한은 지원을 받는 약한 나라지만 그래도 중국과 평등한 관계여서 중국의 충고를 듣고 안 듣고는 북한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감한 부분을 빼고는 1시간 반가량의 인터뷰를 유창하게 한국말로 진행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장팅옌 대사

―1936년 2월 출생
―1958년 베이징대 동어(東語)과 졸업
―1958∼92년 외교부와 주평양대사 관에서 근무
―1992∼98년 초대 주한 대사
―2001년∼ 중한우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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